[오늘과 내일/이승헌]내년 총선 관전법(2)-‘정치 무간지옥’ 피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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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정치권에서 사라진 것 중 하나가 어록이다.
요즘 접하는 정치 언어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필자는 다양한 기회로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을 접하지만 요새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년 총선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 여부, 그리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것들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코인 거래를 밥 먹듯 하면서도 식언하고, 가짜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내는 사람들이 또다시 밀려들면 그야말로 정치 언어의 무간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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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과정서 국민이 납득할 별도 검증 장치 절실
막말은 넘쳐나지만 인사이트가 담긴 언어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요즘 접하는 정치 언어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서울로 달려간다고 (수해 피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윤석열 대통령 우크라이나 순방 중 귀국 여부에 대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답변) “대통령이 입시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수능 논란에 대한 이주호 교육부총리의 답변) “조국과 민족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에 밀어 넣는 일”(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민주당 김의겸 의원 발언)….
3김이 살아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정치 언어가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때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욕을 먹었으나,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들이 있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고 박상천 의원이 장외투쟁을 놓고 벌인 논리와 위트의 대결을 예능 프로그램처럼 지켜본 기억이 여전하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같은 중진들이 담배 연기를 뿜어가며 기자들과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인 ‘봉숭아 학당’도 일상이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정치가 원래 그렇지 뭐” 식의 반응은 도움이 안 된다. 헌법과 국회법을 고친다면 모를까 그전까지 정치인들은 여전히 우리 삶과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들이 어떤 수준의 말을 쓰느냐는 그들이 제공할 정치·정책 서비스 수준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저열한 정치 언어에 노출되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들의 공감 능력이 역대 최악이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딱 네 마디다. 네 마디만 알면 적어도 끔찍한 실수를 피할 수 있는데 그게 작동하지 않는다. 발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시뮬레이션도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수해를 당한 국민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서울 달려간다고…” “궁평 지하차도에 밀어 넣는…” 유의 발언은 있을 수 없다. 용산이 아니라 수험생을 생각했다면 “대통령에게 진짜 많이 배운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순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공감 능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건 게을러서다. 상황에 맞는 정치적 언어를 구사하려면 상대방의 처지를 알아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말을 하려면 민생 속으로 자주 가고 반대 목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여야는 지금 서로 만나지도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대화도 안 하는데 무슨 공감 능력이 생기겠나. 필자는 다양한 기회로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을 접하지만 요새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년 총선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 여부, 그리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것들이다.
결국 정치에 어떤 사람들이 충원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가뜩이나 AI를 통한 허위 조작 뉴스가 범람하고, 유튜브가 진영 충돌의 플랫폼이 된 상황. 내년 총선을 앞두고 코인 거래를 밥 먹듯 하면서도 식언하고, 가짜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내는 사람들이 또다시 밀려들면 그야말로 정치 언어의 무간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 정치권은 선거구제 개편이나 의원 정수 증가 여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그 전에 공천 과정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검증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면 이준석이 도입했던 공직 후보 시험 같은 걸 국회 차원에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각 당에만 공천을 맡기면 우리 정치는 절망을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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