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의 확장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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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아이와 런던 여행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휠체어로 저상버스를 타려면 처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휠체어로 저상버스 타기란 "버스 좀 태워 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인 경험이다.
저상버스 100%가 된 것도, 버스에 휠체어 탑승 버튼이 생긴 것도, 버스 정류장이 휠체어 친화적으로 변화한 것 모두 영국 장애인들이 시위해 얻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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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아이와 런던 여행을 떠났다. 런던은 지하철이 너무 오래돼 좋지 않은 대신 버스가 100% 저상버스라며 꼭 버스를 타라는 당부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휠체어로 저상버스를 타려면 처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돌발상황이 많아서다. 우선 저상버스 보급률이 낮다. 운전기사와 소통이 어렵다. 휠체어로는 눈높이도 낮은데 기사와 구두로 소통해야 한다. 정류장 환경이 열악하다. 휠체어로 타려면 버스 경사로가 바닥에 잘 밀착되어야 하는데 정류장 바닥이 너무 낮거나 높기도 하다. 정류장 주위에 장애물이 많아서 경사로 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경사로가 고장 나거나, 버스기사가 거부하고 가버리는 상황도 휠체어 이용자를 긴장시킨다.
타고 난 후에도 상당수 버스에선 일반 좌석을 접어서 휠체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내릴 때 또다시 기사에게 큰 소리로 "휠체어 내려요"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에서 휠체어로 저상버스 타기란 "버스 좀 태워 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인 경험이다.
런던 버스는 달랐다. 우선 100% 저상버스니까 초조하지 않않다. 버스 바깥 휠체어 눈높이에 휠체어 탑승 버튼이 있다. 기사가 바로 경사로를 내려준다. 버튼이 있다는 걸 몰랐을 때엔 기사와 소통을 시도했는데 기사가 그냥 휠체어를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인다. 영어로 말할 이유도 없었다.
휠체어 탈 때는 어떨까. 일반 승객이 모두 타고 내리면 뒷문을 닫는다. '승차 거부인가?' 싶은 순간 문과 바닥 사이에서 경사로가 쓰윽 나온다. 버스에 들어가면 바로 눈앞에 커다란 휠체어 표시가 있는 자리에 들어가면 된다. 다른 좌석을 접을 필요도 없다. 휠체어석 옆에는 전용 하차 버튼이 있다. 기사와 소통할 필요 없이 그 버튼을 누르면 경사로가 나온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역시 영국이 선진국이라서'일까? 천만에. 저상버스 100%가 된 것도, 버스에 휠체어 탑승 버튼이 생긴 것도, 버스 정류장이 휠체어 친화적으로 변화한 것 모두 영국 장애인들이 시위해 얻어낸 것이다. 서로의 권리가 대립되는 게 아니고, 적절한 규칙이 있다면 모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그 결과 런던 버스에서는 휠체어와 유아차가 공존한다. 단 유아차는 휠체어를 보면 자리를 양보하거나 유아차를 접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유아차로 버스를 타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휠체어 자리에 다른 승객보다 휠체어가 우선이란 규칙이 생긴 것도 휠체어 이용자들의 요구로 생겨난 것이다.
요즘 학생인권과 교권이 서로 대립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두 인권이 서로 대립되거나 제로섬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 어떤 측면으로든 목소리가 작았던 사람들의 권리가 신장되면 전반적인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논의와 규칙이 생겨난다. 영국 휠체어 이용자들의 시위는 유아차도 탑승 권리를 누릴 수 있게 '권리의 눈높이'를 바꾸었다. 이어지는 논의와 시위로 인해 영국에서는 저상버스의 물리적인 구조도, 버스 정류장의 환경도, 버스 이용 규칙도 차츰 바뀌었다. 영국의 휠체어 이용자들이 시위할 때 '유아차를 태우지 말자'고 시위한 게 아니다. 규칙이 정해지며 모두의 권리가 확대됐다. 권리를 상호 대립구조로 볼 필요는 없다. 새로운 논의와 규칙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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