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지붕 태양광’ 투자했을 뿐인데…전기요금 고지서 “0원”
조합원 10만원 출자금·일정 금액 예치 시 유휴부지에 발전소 설치·운영
생산 전력 공급받은 한전은 조합원 전기요금 할인…누진세 구간 효과 커
미국선 사업 모델인데 한국은 원칙적 금지…전문가들 “문턱 낮춰야”
경북 포항시에 거주하는 A씨는 매달 200kWh 남짓 전기를 사용해도 전기요금이 0원이다. 지난 3월 A씨가 우연히 재생에너지 투자 플랫폼 ‘모햇’의 ‘알뜰전기요금제’에 가입한 이후 공장 옥상에서 태양광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고 있어서다. A씨는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전기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는 기획이 신선했다”며 “가입 이후에는 전기요금 납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돼 편해졌다”고 말했다.
25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연료비 급등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태양광을 설치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그러나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의 경우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려면 주민들 동의를 얻어야 해 설치가 쉽지 않다. 아파트 옥상 부지도 제한적이어서 전기요금 절감 효과도 기대만큼 크지 않다.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공장 옥상이나 공공주차장과 같은 유휴부지에 태양광을 설치해 전기를 조달하는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모햇의 운영사인 에이치에너지(H에너지)는 공장 옥상 등을 활용해 생산한 소규모 태양광 전력을 소속 조합원에게 직접 판매하는 ‘알뜰전기요금제’ 상품을 운영한다. 조합원이 출자금 10만원과 일정 금액을 예치하면 유휴 옥상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는 비용으로 사용된다. 공장 옥상 등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만큼 자연 훼손 우려도 크지 않다.
경북 구미·경주 등에 있는 공장 옥상 태양광에서 생산한 전력을 조합원이 거주하는 경산·경주·안동·포항 등 경북 일대에 제공한다. H에너지가 한국전력에 태양광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공급하면 한전은 그만큼 조합원들의 전기요금을 상계처리해 깎아주는 방식이다.
날씨가 좋아 태양광을 통해 생산한 전력량이 소비량보다 많을 경우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따로 사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알뜰전기요금제에 가입한 조합원 80%는 올해 3월 ‘0원’이 부과된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았다고 H에너지 측은 설명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이 소비량보다 적더라도 한전을 통해서만 전력을 공급받는 일반 가구보다는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다. 특히 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이 큰 폭으로 뛰는 누진제 구간에서 알뜰전기요금제의 할인 효과는 더욱 크다.
예를 들어 여름철 450kWh를 넘게 사용하는 가구는 전력량 요금이 kWh당 307.3원에 달한다. 그러나 태양광을 통해 전기 사용량을 450kWh 이하로 줄이면 전력량 요금은 kWh당 214.6원으로 낮아진다. 7300원이었던 기본요금도 1600원으로 절감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국내에서는 개인(사업자 포함) 간 전력 거래가 막혀 있는 것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걸림돌이 돼왔다.
협동조합이 전기판매사업자가 돼 재생에너지 전력을 판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보유한 태양광으로 전력을 생산해도 본인만 사용할 수 있고 타인에게는 판매가 금지됐다. 점차 예외를 허용하는 추세지만 현행 전기사업법은 원칙적으로 발전과 판매의 겸업을 금지하고 생산된 전기도 전력시장을 통해서만 판매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H에너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이런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덕분에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소규모 태양광 전력거래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었다.
H에너지 관계자는 “그동안 사업 준비 등으로 올해 3월에서야 시작돼 현재 참여하는 조합원은 200여명 수준이지만 실증 기간이 연장되면 가입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실증 기간 10㎿의 태양광 설비를 구축한 H에너지는 전력 판매를 허용할 경우 향후 9GW 규모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태양광 공유 시스템이 하나의 사업 모델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커뮤니티 솔라’는 지역 공동체 구성원이 일정 비용을 분담해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운영해 전기요금을 아끼고 발전수익도 공유한다. 집을 갖고 있지 않거나 물리적 제약으로 태양광 설비 설치가 어려운 가구 등도 참여할 수 있다. 미국 태양광산업협회(SEI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41개 주와 워싱턴에서 추진된 커뮤니티 솔라 사업의 발전 설비 용량은 원자력 발전소 4기쯤 되는 5.6GW에 달한다.
최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커뮤니티 솔라 사업에 한화솔루션도 참여해 2025년까지 태양광 모듈 250만개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14만여가구와 사업체 등에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2016년 경기 수원시 솔대마을과 강원도 홍천군 친환경에너지타운을 대상으로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함께한다는 의미의 ‘에너지 프로슈머’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전기를 파는 고객과 사는 고객이 동일 변압기 이내에 있어 전기를 주고받아야 하는 물리적 제약 때문에 참여 가구가 34곳에 그쳤다. 동일 변압기 연결 가구는 보통 10가구 정도로 제한적이다. 한전 관계자는 “소규모 전기공급사업자가 전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시범사업도 흐지부지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인 간 전력거래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직접 발전설비 설치·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시민들도 태양광 발전과 소비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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