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다뉴브강 곡물창고 첫 공격…‘세계 식량’ 볼모로 도박하나
루마니아 국경과 200m 거리
항구도시 레니 등 드론 공격
흑해 이어 수로 수출길 위협
밀 가격 5개월 만에 ‘최고가’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루마니아와 마주 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레니의 곡물창고를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다뉴브강의 항구도시가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흑해곡물협정 연장을 거부한 러시아가 흑해 항로를 대체할 다뉴브강 수로마저 공격 대상으로 삼아 식량위기와 안보 우려를 고조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데사주 레니의 곡물창고 세 곳이 러시아의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파괴됐다. 인구 1만8000명의 항구도시인 레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 영토와 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200m 떨어져 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이란제 샤헤드 드론 16대가 다뉴브강 곡물창고를 겨냥해 발사됐으며 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또 다른 다뉴브강 항구도시인 오데사주 이즈마일에서도 폭발이 발생했다는 우크라이나 지역 언론의 보도가 있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 17일 크름대교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흑해곡물협정 종료를 통보한 데 이어 지난 18일부터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도시인 오데사의 곡물창고와 항만 시설 등을 연일 공격해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흑해 항구가 아닌 다뉴브강 항구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격으로 25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시장에서 밀 가격은 2.6% 오른 부셸당 7.7725달러에 거래되면서 지난 2월21일 이후 5개월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쟁 이전에는 곡물 수출에 거의 활용되지 않았던 다뉴브강은 전쟁 이후 중요성이 커졌다. BBC에 따르면 다뉴브강을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물량은 전쟁 전인 2021년에는 60만t이었으나 지난해 200만t으로 늘었다. 지난 17일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연장을 거부하면서 레니와 이즈마일 등 다뉴브강 항구도시들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흑해 항로가 봉쇄된 만큼 우크라이나가 곡물을 내보낼 수 있는 경로는 다뉴브강을 이용한 수로와 루마니아·폴란드를 거치는 육로뿐이다.
러시아가 다뉴브강 항구를 공격한 것은 세계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인질극이자 나토 동맹국과의 충돌 위험을 키우는 도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레니에서 일어난 폭발은 지금까지 러시아의 공격 중 나토 회원국 영토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것”이라면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과의 직접 충돌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토 조약은 한 회원국의 영토가 공격을 받으면 이에 공동 대응하도록 돼 있다. 러시아가 폴란드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서부를 공격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나토 회원국 영토와 가까운 우크라이나의 시설을 공격한 적은 없었다고 NYT는 전했다.
루마니아 국방부는 나토의 동쪽 측면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면서 “우리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은 없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은 이날 다뉴브강 항구가 공격받으면서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레니가 공격을 받은 뒤 이곳을 오가던 화물선들의 운항이 일시 중단됐고, 일부 보험사들은 다뉴브강 항구를 오가는 선박에 대한 보험을 계속 제공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러시아가 이날 수도 모스크바의 국방부 건물과 가까운 곳의 비거주용 건물 두 곳이 드론 공격을 받은 데 대해 강력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어 향후 우크라이나 곡물창고에 대한 공격이 더욱 격렬해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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