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인간성은 자연으로 ‘회귀’가 아니라 ‘탈피’함으로써 발휘된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기자 2023. 7. 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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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야생 침팬지와 식용 개
서아프리카 기니에 있는 침팬지보전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암컷 셸리가 나무 위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야생 침팬지 사회에는 위계질서가 있으며 다른 집단과의 전쟁, 암컷 납치, 새끼 살해 같은 잔혹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게티이미지 | 이매진스
이 세상에 잡아먹히려고 태어난 생명은 없다. 모든 생물계는 다른 개체의 자원을 ‘탈취’하며 살아간다
야생 침팬지 연구가 보여주듯, 자연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폭력적으로 진화한다. 인간의 문명 때문이 아니다
이런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는 극단적 생태주의는 결국 ‘낭만적 환상’일 뿐

지난 7일 김건희 여사와 만나 개 식용 문화 종식에 뜻을 같이했다는 제인 구달은 침팬지 행동 연구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주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에 생물학이나 생태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야생 침팬지에 대한 다양한 관찰 결과를 통해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인 구달
야생의 침팬지가
사람의 얼굴까지
찢을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죠

제인 구달과 동료들은 1960년 초반부터 야생 침팬지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 10여년간 그들의 초기 관찰 결과 침팬지 사회는 ‘타락한’ 인간의 문명사회와 대비되는 마치 평화로운 자연 속 낙원이나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집단 간의 계획적인 전쟁과 끔찍한 살육, 다른 집단의 암컷을 납치하고 새끼를 살해하는 등 잔혹 행위가 반복적으로 목격되기 시작했다. 구달은 후에 “침팬지들이 우리의 얼굴을 찢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I didn’t know chimpanzees can rip your face off)”고 고백했다. 실제로 2009년 찰라 내시(Charla Nash)라는 미국 여성이 가족처럼 키우던 침팬지에게 공격당해 얼굴이 갈갈이 찢기는 사건이 있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행동이 생물학적 본능인지 인간과의 접촉으로 인한 영향인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예를 들어 벌목으로 인한 서식지 훼손으로 침팬지를 자극했을 수도 있고, 전염병 유입과 같은 생물학적 영향이 있었을 수 있으며,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경쟁을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는 주장들이 대두된 것이다.

이는 마치 토머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로 대변되는 두 진영 간의 성악설 대 성선설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요약되는 홉스의 관점은 자연 상태의 인간은 난폭하고 무질서했으며 국가를 상징하는 ‘리바이어던’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루소는 이와 반대로 인간은 자연적으로는 선하게 태어나는 ‘고결한 야만인’이지만 문명에 의해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가 야생 상태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이런 철학적 관념들에 대한 과학적 증거나 반증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리처드 랭엄
침팬지 간의 살해
인간 영향과 무관
자연에 적응 위한
진화적 전략 결과

결국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인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이끄는 30명의 연구팀이 인간과 접촉하고 있는 침팬지 집단 18곳에서 발생한 살해 사건 152건을 분석해 2014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였다. 대부분 수컷이 다른 집단의 수컷을 대상으로 저지른 이 사건들에 인간과의 교류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살해 행위가 인간의 개입 영향을 가장 덜 받은 아프리카 동부 지역 침팬지 집단들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원시 상태의 서식 환경을 갖고 있는 우간다의 한 침팬지 집단이 가장 폭력적이었다. 결국 폭력성은 자연적인 상태에 적응하려는 침팬지들의 진화적 전략의 결과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2016년 ‘네이처’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도 인간의 폭력성이 생물학적 진화의 양상에 따라 설명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무려 1024종의 포유류와, 구석기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존재한 인간 집단 600개에서 발생한 동종 간의 치명적인 폭력 발생 비율을 조사했다. 유전자 서열의 유사성에 따라 종들의 진화적 관계를 배열하는 것을 계통발생학이라고 부르는데, 이 연구는 수많은 포유류들을 계통발생학에 따라 배치시키고 여기에 폭력에 의한 사망 발생 빈도를 대응시켜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통발생학적으로 예측된 인간의 폭력에 의한 사망 비율은 정확하게 실제 관측된 값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 폭력성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KAIST의 우리 연구실도 미국 조지아텍의 인간진화 연구실과 함께 인간과 침팬지의 공격성이 유전자 수준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진화유전학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아드레날린 수용체 중 하나인 ADRA2C라는 유전자의 양을 낮게 조절하는 DNA 변이를 인간과 침팬지에서 조사해 본 것이다. 이 유전자의 양이 낮다는 것은 우리가 위협을 당할 때 활성화되는 교감신경이 민감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유전체 정보가 확보된 현대인 2504명과 침팬지 56마리의 DNA 서열을 조사해 보니, 이 유전자의 양을 낮추는 조절 변이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집단유전학적 흔적이 있었으며, 다른 유인원에게는 없던 이 변이가 조사한 모든 현대인과 침팬지에서 나타났다. 과거에 없던 변이가 새로이 생겼는데 거의 대다수 사람이 그 변이를 가지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은 교감신경의 활성이 얼마나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또한 이 동일한 변이가 침팬지 집단에서도 다수가 가지고 있는 변이라는 것은 인간의 문명과 상관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폭력의 위협에 대한 교감신경의 대응이 중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간의 전쟁 역사에 대한 야심작인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은 방대한 인류학 자료를 통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즉 인간의 분쟁과 싸움은 문명 때문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서로 빼앗으려는 진화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싸움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그들과 친족의 생존 및 번식의 성공을 좌우하는 유무형의 재화를 얻고 잃는 문제가 싸움의 위험성보다 중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이 점에서 인류학 연구들의 결론은 루소가 아닌 홉스의 관점, 즉 성악설을 지지한다고 그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본성은 평화주의자라는 성선설의 믿음을 야생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던 일부 초창기 침팬지 연구자들의 소망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사실 다른 생명체가 애써 만들어 놓은 자원을 탈취하는 것은 침팬지와 인간 사회뿐 아니라 생물계 전체에 퍼져 있는 행위이다. 심지어 바이러스나 세균도 탈취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감염이라고 부른다. 바이러스는 아무런 물질대사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DNA를 복제하고 번식하는 것조차 숙주의 자원과 에너지를 이용할 정도로 극대화된 기생 생활을 한다. 세균들도 바이러스의 감염 대상이다.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은 세균들이 바이러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발달시킨 ‘크리스퍼(CRISPR)’라는 방어기제를 과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균도 같은 행위를 한다. 동식물을 감염시키는 많은 세균들은 스스로 물질대사를 하고 복제와 번식을 하기는 하지만 숙주의 자원을 탈취하며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다.

감염이 몰래 벌어지는 탈취라고 한다면, 힘으로 이루어지는 강제적인 탈취가 바로 포식이다. 식물을 잡아먹는 초식동물,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 모두 포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최초의 포식자는 다름 아닌 세균이었을 것이다.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원인 ATP를 만들 수 있던 호기성 세균이 혐기성 세균에게 포식당한 후 미토콘드리아라는 형태로 공존하게 된 것이 동물, 식물, 균류의 공통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세균을 포식해 엽록체까지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식물의 기원이다. 최초의 생명체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나, 머지않아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 낸 자원을 목숨째 가로채며 살아가는 행위가 생명의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엽록체를 통해 스스로 유기물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개발된 후에도 많은 생물들은 다른 개체의 자원을 탈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남이 만든 것을 빼앗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가트가 지적했듯이 인간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 세계의 이런 실상을 모르고 여전히 자연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다. 환경보호나 동물복지 향상 등 좋은 취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극단적이고 섬뜩한 인간 혐오 사상을 가지고 있다.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에 굉장한 애견인으로서 최초의 현대적인 동물보호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이용한 생체실험을 금지했다는 사실은, 나치가 자행한 인체실험을 더욱 끔찍한 범죄로 만든다. 최근 대두하고 있는 극단적 생태주의는 인간을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보다 자연의 생태를 우선시하며 자연과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아예 인간은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보기도 한다. 이들의 눈에 자연은 순수하고 소중한 보호의 대상이며, 인간은 그저 환경을 파괴하고 개를 비롯한 동물을 잡아먹고 자연 질서를 어지럽히는 적대적인 존재,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존재로 비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야생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식중독, 감염, 맹수나 독충의 공격 등으로 며칠도 못 버티고 죽어버릴 나약한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의 노력과 노동으로 제공된 아늑한 문명의 그늘 아래서 살면서 하는 철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철학적으로도 과연 인간이 없는 자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있으나 인간 없는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우주에 대해 사유하고 의미를 부여해 줄 존재 없이 그저 거기에 있는 우주는 하나님에게도 의미가 없는 무한한 공허의 공간일 뿐이다.

개 식용 문화를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윤리 의식에 불과하다. 엄밀히 따지자면 다른 가축들, 심지어 식물을 먹는 것은 합당한가 하는 질문까지도 다뤄야 한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논의하겠지만, 식물도 동물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많은 식물이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감자가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독성이 생기는데, 이것을 몰랐던 과거 유럽인들은 감자를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감자를 악마의 음식이라고 불렀다. 마늘이나 양파를 썰 때 분비되는 매운 성분 역시 방어기작의 하나다. 어떤 식물들은 초식동물에게 먹히거나 곤충의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 독성을 실시간으로 만들어 내며 주변에 경고 신호를 전달하기도 한다. 식물은 아니지만 수많은 버섯에 독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잡아먹히려고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러므로 제대로 윤리를 따지자면, 여러 과학적 사실들에 기반한 철학적 고민도 필요하며, 인공 식품과 같이 과학기술에 기반한 실제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까지 나아가야 한다.

또 하나. 그나마 개를 먹는 것은 야만적이라는 기초적인 도덕 관념이라도 가지기 시작한 건 인간이 유일하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을 뺀 자연 세계에는 오직 약육강식뿐, 그런 고민은 흔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성은 자연으로 ‘회귀’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발휘된다. 우리가 개로부터 시작해 가능한 한 많은 생명체를 먹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타락한’ 인간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다른 ‘구별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찾기 위함이어야 할 것이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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