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스라엘 대법원

이하원 논설위원 2023. 7. 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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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1948년 5월 독립한 이스라엘은 헌법이 없는 나라다. 건국할 때 세속주의와 종교주의 양대 세력의 헌법 관련 견해 차이가 컸다. 결국 11개의 기본법에만 타협했다. 기본법과 일반법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1995년 대법원이 이와 관련한 결정 권한을 갖기로 했다. 크네세트(의회)가 법을 만들어도 대법원이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폐기되도록 한 것이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헌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각책임제의 행정부와 의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종교 국가 성격이 있는 이스라엘에서 인권을 넓히고 다양성 있는 국가가 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사법부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법관 선정위에서 임명된 이들의 권한이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보다 큰 것은 문제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다. 팔레스타인 정착촌과 관련한 부동산 소송, 동성애 문제 등에서 대법원이 유대교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익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보수파를 대표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올 초 컴백, 여러 정당과 손잡고 ‘사법부 개혁’에 나섰다. 상당수의 군인, 경찰까지도 이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24일 통과시켰다. 대법원이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해도 의회 과반 의결로 번복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의회가 대법관 선정을 좌우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네타냐후는 “3부 간 균형 복원을 위해 필요한 민주적 조치”라고 했지만 국내외에서 반발이 크다.

▶미국이 크게 화를 내고 있다. 바이든 백악관은 네타냐후 정권과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독재 정권의 수립’이라고 비판하며 “이스라엘 시민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을 악마로 보고,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 파괴를 목표로 한 유대 우월주의자들의 궐기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본 것이다. 국립외교원의 인남식 교수도 “이스라엘이 기로에 섰다”며 중동 적대국과 맺은 아브라함 협정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중동은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동맹에 이상이 생기면서 위험 신호가 켜졌다. 이란과 사우디는 중국 중재하에 손을 잡았다. UAE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에서 기권했다. 중동에 큰 구멍이 생겼다.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중동에서 네타냐후의 사법부 무력화와 그로 인한 연쇄 파장은 이스라엘 국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나비효과’를 낳을지 우리도 주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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