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뉴욕 학생권리장전
1689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권리장전은 명예혁명의 산물이다. 명예혁명이 영국의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열었다면 권리장전은 개인의 자유와 시민권을 확립했다. 미국에선 독립혁명 직후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발효된 수정헌법(1~10조)을 권리장전이라고 불렀다. 인권을 명문화한 헌법 정신이며, 권력과 시민권의 균형추 역할로 민주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 권리장전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뉴욕 학생권리장전은 학생의 권리와 함께 책임과 의무도 비슷한 비중이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권리만 있지 책임과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학생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방조한 결과 교권이 침해됐다는 논리를 펴기 위해 뉴욕 학생권리장전을 끌어온 것이다. 하지만 2010년 학생인권조례를 자문했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생권리장전은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 사회 특성을 반영해 학생 책무를 별도로 규정(24개 항목)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시민적 공화주의가 근간이라 학생 책무를 따로 둘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공동체 속에서 학생 간 권리를 조화롭게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가 학생인권조례 전반에 깔려 있다는 의미이다.
뉴욕 학생권리장전이 학생과 학교 충돌 시 해결 기준을 많이 제시했다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 생활규범에 가깝다는 차이도 있다. 윤 원내대표가 이를 무시하고 “학생인권조례는 뉴욕 학생권리장전 껍데기만 카피했다”고 폄훼하는 것은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악마화하는 ‘혐오·정쟁 정치’로밖에 볼 수 없다.
“학생·학부모·교직원 간의 상호존중을 쌓고자 한다”로 시작하는 뉴욕 학생권리장전 전문 어디에도 교권과 학생인권이 배치되는 내용이 없다. 여권이 학생인권조례 독소조항으로 꼽은 차별금지·사생활 자유는 뉴욕 장전도 교육받을 권리나 표현의 자유 권리에 보장 조항으로 뒀다. 그런데도 교권과 학생인권을 제로섬 관계처럼 몰아치고 있다. 이럴 일도, 이럴 때도 아니다.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학교 공동체의 민주적 소통을 강화해야 할 책임이 여권에 있다. 뉴욕 학생권리장전과 학생인권조례가 나아가려는 큰 물줄기는 결코 다르지 않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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