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는 거북선
[한겨레 프리즘]
[전국 프리즘] 최상원 | 전국부 선임기자
왜구가 더 이상 우리나라에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임진왜란 때보다 더 많은 거북선이 우리 바다를 지키고 있기 때문!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거북선 3~7척을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철저한 고증을 거쳐 원형을 복원했다는 거북선이 7월1일 기준 남해·사천·창원 각 1척, 거제 2척, 통영 3척 등 경남에만 8척에 이른다. 이것만으로도 임진왜란 때보다 많다. 전남에도 여러 척의 거북선이 있다. 거북선 풍년이다. 하지만 노를 저어서 달릴 수 있는 거북선은 단 한 척도 없다. 대부분 뒤뚱거리며 바다에 제대로 떠 있지도 못한다. 바닥에 물이 새서 뭍으로 끌어올려진 경우도 있다.
‘1592년 거북선’이 대표적이다. 경남 통영시는 지난 11일 이 거북선을 부숴 나무는 불태우고 쇠는 고철로 처분했다. 경남도는 2008년 거북선 제작을 추진하며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철저히 고증해서 제작하고, 재료도 당시와 같은 금강송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1592년 거북선’이라고 이름 붙였다. ‘1592년 거북선’은 16억여원을 들여서 2011년 완성했는데, 완성 직후 값싼 수입 소나무를 81%가량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명품으로 추앙받다 하루아침에 ‘짝퉁 거북선’으로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2011년 6월17일 경남 거제시 일운면 ‘거제조선해양문화관’ 앞 지세포항 바다에 띄웠더니, 바닥에 물이 차오르면서 선체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거북선을 넘겨받은 거제시는 2012년 거북선을 뭍으로 끌어올려 거제조선해양문화관 마당에 전시했다. 이후 관리비로 1억5천여만원을 썼지만, 거북선 목재가 썩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경매시장에서 154만여원에 낙찰되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낙찰자마저 인수를 포기했다. 결국 거제시는 지난 11일 이 거북선을 폐기 처분했다.
거제시는 2012년 7억5천만원을 들여서 거북선 한 척을 새로 만들었다. ‘짝퉁 거북선’ 때문에 겪었던 수모를 만회하겠다는 각오를 담아서 ‘임진란 거북선 2호’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2013년 12월 완성해서 거제 옥포항 바다에 띄웠더니 이 역시 물이 새면서 기울어졌다. 어쩔 수 없이 거제시는 이 거북선도 2016년 뭍으로 끌어올려 전시하고 있다.
용케 바다에 떠 있다 하더라도 기울어지지 않게 묶여 있는 등 다른 거북선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3층, 2층, 2층 복층 등 거북선 내부 구조와 모양도 제각각이다. 거제에 있는 ‘1592년 거북선’과 ‘임진란 거북선 2호’의 폭은 6.87m인데, 통영에 있는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통제영 거북선’의 폭은 10.3m로 크게 차이 난다. ‘전라좌수영 거북선’ 등판에는 송곳이 촘촘히 꽂혀 있지만, ‘통제영 거북선’ 등판에는 송곳이 없다. 심지어 바다가 없는 서울시조차 1990년 거북선을 만들어 한강에 띄웠다가 2005년 경남 통영시에 기증했는데, ‘한강 거북선’에는 엔진이 설치돼 있다.
조선 최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만든 거북선들이 어쩌다 하나같이 애물단지가 됐을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제는 나무배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목선 건조 기술자를 찾기 어렵고, 목선 건조 기술의 맥은 끊기다시피 했다. 게다가 평범한 어선도 아닌 거북선을 나무로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또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최첨단 무기였기에 설계도는 특급 기밀로 관리됐을 것이고, 이 때문에 설계도가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고증과 복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경쟁하듯 거북선을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북선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첫번째일 것이다. ‘짝퉁 거북선’도 그래서 태어났다. 하지만 거북선은 그저 관광자원으로 다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우리 손으로 거북선을 불태워 없애는 것은 ‘짝퉁 거북선’ 한 척으로 충분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에 또다시 흠집을 내어서는 안 된다.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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