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우리는 왜 이토록 오만해졌을까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가난하되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되 교만함이 없다’(貧而無諂, 富而無驕).
‘논어’에서 제시된 이상적 인격의 형태다. 사실, 유교를 포함한 세계 모든 종교의 경전에는 오만함을 경계하는 문구가 들어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오만이라는 정서적 배경은 객관적인 현실 판단을 가로막고, 때로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승자’라고 판단한 사회가 오만함을 깨닫지 못해 궁극적으로 쇠락의 길로 간 사례는 세계사 속에 수두룩하다.
1990~2000년대 미국이 동구권의 몰락을 ‘역사의 종말’이라도 되는 양 미국식 의회주의 정치의 ‘최종적 승리’로 오판하고 발칸반도와 중동 등지에서 당시 미국 지도자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힘으로 강요하려고 한 것은 그 전형적 사례다. 이 오만한 오판의 대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불명예스러운 패주, 그리고 미 제국 쇠락의 본격화였다. 사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 이런 오만한 오판의 범주에 속하고 시진핑 시대 중국의 공격적 외교 역시 오만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고금동서의 역사에서 제국들의 오만한 과욕은 늘 그 파멸의 문을 열어주곤 했고, 현재의 상황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중·러와 같은 제국이 아니다. 저들만큼 거대한 오만에 빠질 일이야 없을 것이다. 한데 지난 70여년 동안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여러가지 성공을 거둔 대한민국은 최근 역사와 현실에 관한 몇가지 극도로 자기중심주의적인 담론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한다. 이 오만한 착각들이 결국 잘못된 현실 판단으로 이어져 나라를 그릇되게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주된 걱정이다.
보통 한국 교과서나 언론들은 한국의 ‘기적’ 같은 산업화를 오로지 한국과 한국인의 성취인 것처럼 기술한다. 보수는 개발독재의 ‘성공’을 찬양하는 반면, 더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쪽은 죽도록 열심히 일해온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강조한다. 한데 고강도 장시간 노동은 사실 세계체제 주변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1960~80년대 국가 주도 경제개발을 시도해보지 않은 주변부 국가는 거의 없었다.
그 시도가 유독 한국이나 대만 등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에서 성공한 원인으로는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냉전’이라는 맥락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북한 등 공산국가와 접한 ‘접경지대’에 있었던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원조를 받은 나라 중 하나다. 1979년까지 받은 원조액은 146억달러에 이를 정도다. 거기에다 미국은 장기 저리 차관을 알선해주고 개발독재의 보호주의적 경제정책을 눈감아주고 선진국 시장·첨단기술에의 접근을 허용해줬다. 이와 같은 파격적 혜택의 대가는, 한국이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안보·외교적 종속이다. 단순화해 이야기하면, 대한민국은 ‘주권’을 양보한 대가로 상대적 ‘번영’을 산 거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걸어온 궤적은 이와 달랐다. 소련은 미국만큼의 원조도, 미국과 같은 수준의 첨단기술 이전도, 미국과 비교할 만한 거대한 시장도 북한에 제공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중·소 갈등을 이용해 이미 1960년대 초반에 소련으로부터 벗어나 명실상부한 ‘완전한 주권’을 획득했다. 물론 이는 ‘배고픈 자주’일 수밖에 없었다. 세계체제 핵심부로부터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었던 북한의 평균적 생활수준은, 이미 1970년대 중반 초고속 성장 중이던 한국에 추월당했다.
한데 북한의 역사 전체를 ‘실패작’인 것처럼 생각하는 많은 한국인의 오만한 의식과 달리, 북한의 근대화 프로젝트 또한 ―번영을 보장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포괄적이며 철저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핵물리학 전문가 집단과 그 집단을 재생산할 수 있는 고등교육 체계, 미사일 생산시설, 그리고 그 시설에서 사용할 정밀기계를 생산해낼 수 있는 공장 등 엄청난 규모의 기술·과학 인프라를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 평화주의자인 나로서는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인프라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사회는, 비록 가난하고 억압적이지만 나름대로 선진적이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오만하게도 북한을 ‘실패한 나라’로 보곤 하지만, 북한은 어떤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선진국’에 더 가까울 것이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크나큰 자랑은 한류의 세계적 성공, 그리고 그 성공으로 인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 상승이다. 해외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물론 한류가 한국과 한국학의 위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한국 대중문화 관련 강좌는 매년 수강생들을 가장 많이 모으는 교양과목 중 하나다. 최근 해외 한국학이 ‘주류’의 위치를 얻은 것은, 많은 면에서 한류의 힘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한데 케이(K)-드라마들을 전세계에 알린 넷플릭스의 경우를 보자. 넷플릭스가 지난 7년 동안 한국 작품에 1조5천억원이나 투자했다지만, 작품 제작비를 전액 지원하는 대신에 그 작품의 지식재산권을 독점하고 있다. 결국 ‘오징어게임’처럼 세계적으로 히트 친 작품도 대부분 수익은 넷플릭스가 가져간다. 사실, 넷플릭스와 같은 미국의 글로벌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국내 제작자들은 하도급 업체에 불과하다. 즉, 한류가 아무리 인기 절정을 이룬다 해도 한류의 붐 역시 종속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성공에 대한 환호가 아닌, 교만하지 않은 겸손의 태도다. 우리의 성공이 컸던 만큼 그 성공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대가 역시 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 성공과 불가결의 관계에 있는 대외종속 등 문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지 냉정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아울러, 우리와 본질에서 다른 궤도를 따라온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실패’했다는 오만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들의 현실을 객관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우리를 더 우월한 존재로, 그리고 그들을 열등한 타자로 착각하여 그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절대 안 된다. 독선과 오만, 국가적 나르시시즘의 끝에 쇠락과 파멸이 온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보다 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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