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상상력을 빌려오자
[노 땡큐!]
사이버펑크는 에스에프(SF)의 하위 범주로, 비교적 미래의 정보통신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다.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문제적 사회현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이버펑크는 고도로 기술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 권력과의 갈등을 다루는 것이 그 특징이다. 육체를 이탈해 정보의 바다로 다이빙해 데이터를 탈취하고, 시스템을 해킹해 해방시키는 영웅들이 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매트릭스>나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들이다.
고도 기술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사이버펑크라는 용어는 사이버네틱스와 펑크의 조합이다. 사이버네틱스는 인간과 컴퓨터, 또는 인간과 인공 신체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분야다. 정보의 흐름과 통제에 대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펑크는 체제에 대한 반문화를 의미한다. 1980년 브루스 베스키라는 에스에프 소설가가 처음으로 ‘사이버펑크’의 개념을 고안했고, 동명의 제목으로 소설을 썼다. 그는 어느날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던 컴퓨터 매장에서 일련의 십대무리들이 임의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도망가는 장면을 보고, 미래에 개인용 노트북을 든 채 프로그래밍으로 체제에 반항하는 어린 펑크족들을 상상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당시 인기있었던 펑크 록커 빌리 아이돌을 염두에 두고 펑크족 아이돌과 컴퓨터공학이라는 이질적인 결합을 모델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컴퓨터는 매우 접근하기 어려운 비싸고 복잡한 기계였기에 어리고 반항적인 이들의 무기로 설정한 작가의 상상력은 새로웠다. 이 펑크 스타일은 이후 모든 SF의 하위범주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그 예를 들어보자. 디젤펑크는 디젤엔진을 장착한 이동수단과 기름만이 세계유일의 동력원인 시대, 이를 둘러싼 암투와 여기에 반항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장르다. 아톰펑크는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원자력 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인 세계, 이 동력원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고 핵융합 에너지를 가진 영웅이 등장하는 장르다. 바이오펑크는 약물이나 생체조작을 통해 강화되는 미래세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세계에 대항하는 일련의 영웅들이 등장하는 장르다. 아케인펑크는 마법이 일상회된 중세에 일찍 산업혁명이 들이닥쳐, 기계와 마법이 공존하는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장르다. 이 밖에도 조합에 의거해 무수히 많은 SF펑크스타일이 가능하다. 어느덧 수많은 과학기술+펑크스타일의 만남은 SF를 통해 현실과 미래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을 만들어왔다. 나아가 이제 펑크스타일의 향유자들은 이야기 소비자를 넘어서 현실사회에 저항하기 위한 태도와 제스처를 길러내는 장소로 SF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에 나온 나비족 코스프레를 하고 “지구인들이여, 너희는 우리 땅을 빼앗지 못해!”라고 외친다. 타이 학생들은 “봉건주의를 타도하자! 민중이 번영해야 한다”며 시위를 알리기 위해 〈헝거게임〉을 본 따 세 손가락으로 경례하는 의식을 치른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는 에스에프는 활동가에게 정치적인 대리자로서의 감각을 발달시키며,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불가피한 좌절 속에서도 지탱할만한 활력을 부여해준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에스에프 워크숍의 사례를 통해 보수적인 참여자들이 대안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데 주저하고, 인간의 진보 개념에 대해 보다 회의적이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전통에 더 골몰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안의 미래를 상상하며 쓰고 읽는 에스에프 문화는 그 자체로도 현재에 대한 반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SF는 지배적 과학기술에 반항하는 실험실
전지구적인 기후위기, 전쟁으로 인한 식량난의 가중, 킬러로봇의 출현, 생성인공지능의 보급으로 인한 실직사태가 예견되고 있는 지금. 이쯤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는 어떤 펑크스타일을 상상해야 할까? 이 모든 문제를 미래의 과학기술이 해결하리라는 막연한 전망보다는 이 문제들을 일으킨 과학기술에 저항하고 다르게 배치하는 상상력을 제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climate)와 소설(fiction)을 결합한 클라이파이(Cli-Fi)나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조화로운 삶을 다루는 솔라펑크(Solarpunk) 등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현실참여적인 정치의 장을 마련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이 점에서 SF는 더이상 ‘공상과학소설’로 관습적으로 번역되어서는 안 되며, 무색무취의 ‘과학소설’만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펑크스타일이 내재한다는 점에서 SF는 지배적 과학기술에 반항하기 위한 상상력의 실험실이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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