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이상민 탄핵 기각] `참사 정쟁화` 정치권에 경종 울린 헌재
민주당 주장 조목조목 반박
헌법재판소(헌재) 9명의 재판관들은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 판결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탄핵 추진 주요 논거 대부분을 부정했다. "이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다"라고 적시했다. 참사를 정권 탓으로 돌린 민주당의 주장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대형 참사만 나면 사퇴·파면 등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헌재는 이날 판결 기준에 대해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과 '파면 결정으로 인한 효과' 사이의 법익형량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사전예방 조치, 사후 조치, 사후 발언 등으로 나눠 이 장관의 대응을 판단했다.
헌재는 이 장관의 사전 예방조치에 대해 "(현행법은)다중밀집으로 인한 압사 등 인명피해 사고에 대한 재난관리주관기관을 별도로 분류해두지 않고 있다"면서 "재난관리주관기관이 특정되지 않은 재난 발생 시 사후적으로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피청구인이 이 사건 참사, 발생 전에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재난안전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중밀집사고 예방에 관한 부분에 대해 "이 장관은 재난안전법에 의해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 축제 중 대규모·고위험 축제에 대해 필요시 표본 점검 실시, 미비점에 대한 개선·보완·시정 요청 및 조치결과 확인 등을 했다"면서 "재난안전법 시행령에 따라 지역축제 안전관리 매뉴얼이 통보·공개된 사실도 있으므로 다중밀집사고 자체에 대한 예방 대비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 핼러윈 기간 이태원의 인파 밀집을 예상하고 우려를 나타낸 보도를 한 것에 대해서도 "다중밀집사고 자체를 예상하거나 우려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용산구청·용산경찰서 등이 행정안전부나 이 장관에게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사전조치를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난안전망에 대해서는 "참사 발생 당시 서울소방본부 종합상황실은 이전에 사용하던 무선통신망(TRS ) 방식 을 사용하고 재난안전통신망(PS-LTE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등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이는 재난안전통신설비의 신규 도입 교체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종전의 무선통신망을 활용하는 지령장치가 모두 교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사고후에 이 장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운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필요성과 시기에 대한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한 때에 위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실질적 초동대응이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헌재는 긴급구조 현장지휘를 장관이 소방청장·경찰청장에게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긴급구조의 현장지휘와 관련된 행안부 장관의 권한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은 없다"면서 "구체적인 지원요청이나 협력 요청을 받지 않은 이상 이 장관이 현장에서보다 적극적으로 현장지휘 감독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괄 조정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헌재는 민주당에서 '망언'으로 지목했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는 이 장관 발언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부적절하지만, 발언이 사건 다음날로 참사 현장의 정확한 정보를 수집·파악하기에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참사 원인이나 경과를 왜곡할 의도라기보다는 신속한 정보 제공에 무게를 두다가 나온 경솔한 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헌재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 및 매뉴얼의 명확한 근거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고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했으며 △재난상황에서의 행동요령 등에 관한 충분한 홍보나 교육 안내가 부족하였던 점 등을 열거하면서 "총체적 으로 결과임으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는 어렵다"고 적시했다.
소수의견에서도 이 장관이 사건 초기 85분~105분가량 원론적 지휘를 한 것이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의견이나 참사 원인에 대한 발언이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이 장관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다고는 판단하지 않았다. 정권의 무능을 참사 원인으로 꼽은 민주당의 주장을 사실상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참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사퇴 요구·탄핵소추 강행 등 여론으로 책임자의 거취를 결정하는 정치권의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헌재는 "탄핵심판절차는 공직자의 직무수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데 본래의 목적과 기능이 있다"면서 "이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재난대응 과정에서 최적의 판단과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재난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규범적 심판절차인 탄핵심판절차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임재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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