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지키려면 발톱 드러낼수밖에” 美대선 뛰어든 보수 ‘엄마곰들’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7. 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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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서 부동층 표를 움직인 엄마 유권자 층, 사커 맘→시큐리티 맘→마마 베어스로
공립학교의 성 다양성 교육에 반발

미국의 역대 대선에선 부동층(浮動層) 표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렇게 추정되는 유권자 집단이 늘 있었다. 1996년 대선에선 ‘사커 맘(soccer moms)’이었다. 도시 교외에 사는 중산층 엄마들로, 아이들을 미니밴으로 축구 클럽에 데려다주며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로 백인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정치를 꿈꿨고, 그해 빌 클린턴의 재선을 도왔다. 이 ‘사커 맘’들은 미국이 2001년 9ㆍ11테러를 겪으면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국가와 국민을 테러로부터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시큐리티 맘(security moms)’으로 바뀌었고, 2004년 미 대선에선 전년(前年)에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의 재선에 힘을 보탰다.

2004년 대선에선 또 미국자동차경주협회(NASACAR)의 경기 팬인 미국 남부의 가정적인 중층ㆍ중하층 백인 민주당원 아빠들인 ‘나스카 아빠(Nascar dads)’들도 큰 부동층을 형성했다. 이들은 과거에는 민주당에 투표했지만, 총기규제에 반대하며 공화당 후보들에 표를 던졌다.

이들 특정 집단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과장됐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나스카 아빠’란 말도 당시 4500만 명에 달하는 이들 집단을 잡으려는 민주당 여론분석가가 만들어낸 말이었다.

지난 달 30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보수주의 엄마들의 모임인 '맘스 포 리버티' 전국 총회에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리고 이제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새롭게 ‘엄마 곰(mama bears)’들이 등장했다. 최근 수년 간 미국 민주당과 좌파가 극도의 리버럴로 치우치면서,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들은 자녀의 교육에 대한 부모의 법적인 권리를 주창하며, 학교에서 자녀들에게 동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성(性) 정체성을 가르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당연히 민주당 좌파에선 이들을 ‘혐오집단’ ‘테러집단’ ‘극단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

◇엄마 곰들의 전국 총회에 미 공화당 예비 후보 5명 출동

그러나 이들은 내년 공화당 대선 후보를 꿈꾸는 예비 후보들이 가장 탐 내는 유권자 집단이기도 하다. 지난 6월 30일 ‘엄마 곰들’의 대표적인 전국 조직인 ‘맘스 포 리버티(Moms for Libertyㆍ법적 자유를 위한 엄마들)’의 필라델피아 총회에는 5명의 공화당 예비 후보들이 참석해 연설했다. 3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 단체는 현재 44개 주에 12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예비 후보들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른 바 ‘문화 전쟁’에 흥분한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호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은 “엄마들을 열 받게 하지 말라(Don’t mess with America’s moms)”며 “신(神)이 남녀 양성(兩性)을 창조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회복해서, 성 정체성(正體性)이란 독약을 퇴치하는 역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에 이어 현재 공화당 예비주자 중 지지율 2위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미국의 우오크(wokeㆍ’깨어난’) 정책이 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인 ‘엄마 곰들’을 잠에서 깨웠다”며 자신이 지난 4월 유치원에서 12학년에 이르기까지 주 공립학교에서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에 대한 교육을 금한 것을 강조했다. ‘우오크’는 인종과 성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에 대해 다양성과 평등을 극도로 주장하는 의식화 운동이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아내 케이시 디샌티스는 공화당 경선이 시작하는 아이오와 주에서 ‘디샌티스를 위한 엄마들’이란 조직을 구성했다. 그는 “정책이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엄마 곰들이 발톱을 드러내게 된다”고 말했다.

니키 데일리 전 유엔 대사 역시 “만약 좌파가 ‘맘스 포 리버티’를 테러단체로 몬다면, 나도 맘스 포 리버티 회원으로 간주해 달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총회가 열리는 호텔 밖에선 다양한 성 정체성을 주창하는 LGBTQ 단체들의 시위가 열렸다.

6월30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맘스 포 리버티'의 당일 행사를 마치고 떠나는 보수적인 엄마들이 반대파와 거리에서 설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자녀의 온라인 교육 살피면서 형성돼

엄마 곰들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형성됐다. 이들은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교육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됐고, 교육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이른바 ‘깨어난’ 프로그램에 놀라게 됐다.

엄마 곰들은 성의 다양성과 평등, 관용을 강조하는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 반대하며, LGBTQ를 다룬 책들을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학교의 독서 목록, 도서관 서고에서 금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엄마 곰들은 학교와 공립 도서관의 운영 이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엄마 곰들의 모임으로는 ‘맘스 포 리버티’ 외에도, ‘좌편향 교육 반대(No Left Turn in Education)과 같은 단체도 있다. 일부는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이오와주 매리언에 사는 엄마 제럴린 존스(31)는 AP 통신 인터뷰에서 “교육위원회가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스스로 규정한 성(性)에 따라 학교의 남녀 화장실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게 결정하자, 두 아이를 자퇴시켰다”고 말했다.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 페일린, ‘엄마 회색곰’ 주창

엄마 곰들의 기원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판론자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와 행진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이 변질돼, 이후 미국 남부 여성들이 흑백 분리와 백인 우월주의를 주창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2008년 미 대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러 페일린과 회색곰/자료사진

2008년 미 대선에선 당시 46세의 매력적인 여성 알래스카 주지사 세러 페일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와, 민주당을 막을 보수적인 여성들을 ‘엄마 회색곰(mama grizzlies)’이라고 불렀다. 페일린의 주장은 특히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중요시하며 미국 시골에 사는 여성들의 자녀 보호 본능에 호소력이 컸다.

전통적으로 미국 선거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민주당을 뽑았다. 2020년 대선에서 여성 유권자의 55%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트럼프의 여성 유권자 점유율은 43%이었다. 그러나 작년 중간 선거에선 연방 하원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의 여성 유권자 중 득표율은 50%로, 남성 유권자의 득표율 47%를 조금 웃도는 데 그쳤다.

론 디샌티스의 경우, 작년 주지사 재선 캠페인에서 여성 유권자 표의 57%를 차지하며 승리를 굳혔다. 또 작년에 ‘맘스 포 리버티’ ‘1776 프로젝트’와 같은 미국 내 보수 세력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행동주의자들 수백 명을 학교와 도서관 운영위원회 선거에서 당선시켰다.

◇반대파 “엄마 곰이란 푸근한 이미지로, 자녀에게 해 끼친다”

물론 레드 와인 앤 블루(RWB)와 같이 ‘맘스 포 리버티’에 맞서는 여성들의 모임은 “보수주의 엄마들이 엄마 곰이란 푸근한 이미지를 내세워, 사실을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극단적인 의제를 숨긴다”고 비판한다.

RWB의 한 인사는 “공화당 측은 이 기반을 휘젓는 것이 경선 승리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부모의 권리, 엄마 곰이란 표현들이 마치 ‘상식(常識)’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극단적인 정치 의제를 수행하려는 소수의 권리”라고 비난했다. 반대파들은 또 “엄마 곰들이 제한된 교육 자원을 팬데믹이 끝난 수백만 명 아이들의 독서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 전역에 몇 명 안 되는 트랜스젠더 학생들의 여성 경기 참여와 같은 지엽적인 이슈를 크게 부각시키는 데 낭비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흑인 여성으로서 ‘맘스 포 리버티’의 한 간부인 세 아이의 엄마인 티아 베스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이느냐”며 “지금은 우리 애들을 위해 모두 함께 일어설 때”라고 말했다.

아이오와 주의 엄마 곰인 존스는 AP 통신에 “어느 집에나 대개 엄마는 있다. 따라서 우리 목소리는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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