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은행 충당금 비율 美 3분의 1 수준···당국 '도미노 부실' 막을 방어막 설치
은행 자체적으로 산정한 경험 PD
적립규모 규제목적 PD 절반수준
금융위기 등 예상밖 악재에 대비
당국선 "충당금 더 쌓아라" 권고
"美 모든 대출 잠재적 위험군 분류
韓은행 위기감 낮아···개선 필요"
금융 당국이 최근 은행 대손충당금 적립 지침을 개정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가계대출 및 기업대출이 부실화하고 연체가 급증할 가능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례적으로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와 정부의 코로나19 금융 지원으로 가려진 부실이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는 만큼 과거 실적에 비춰 앞으로의 부실 수준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은행이 관례적으로 써온 충당금 산식을 바꾸지 않으면 은행의 건전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올 들어 매달 오름세를 보였다. 6월의 경우 평균 연체율이 0.29%로 전월 대비 0.04%포인트 낮아지기는 했지만 이 기간 시중은행이 대규모로 부실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한 영향이 컸다. 시중은행이 2분기 상·매각한 부실채권은 전 분기보다 58% 증가한 1조 3560억 원에 달했다. 불어난 부실을 장부에서 서둘러 지운 덕분에 매달 치솟는 연체율 상승세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율의 절대 수준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지표가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코로나19 때부터 경기 하강 국면에도 상환 유예 등 정부가 금융 지원 조치를 쏟아낸 덕에 은행 건전성은 외견상 나아지는 듯 보였지만 앞으로가 문제”라고 우려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손충당금 적립 지침 개정안에 따라 은행은 충당금을 산정할 때 그간 기준으로 삼던 ‘경험 부도율(Probability of Default·PD)’뿐만 아니라 보다 보수적인 ‘대표 PD’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대표 PD는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산정 시 활용하는 ‘규제 목적 PD’에 연동된 지표다. 은행권은 통상 규제 목적 PD 값이 경험 PD 값보다 많게는 2배가량 높다고 본다. 은행 입장에서는 그만큼 충당금을 더 적립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경험 PD와 달리 규제 목적 PD는 당국의 깐깐한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들의 예상 손실 평가 모형은 저금리 상황이었던 과거 10여 년 동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된 것이라 현 시점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는 게 당국의 기본 입장이고 은행권 역시 전반적으로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개정 지침을 마련한 데는 주요국에 견줘 우리나라 은행들의 위기 대응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실제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소관 은행 중 규제 목적 PD 이상의 부도율을 기준으로 충당금을 쌓은 은행의 비중은 2020년 말 기준 68%에 달한다. 유럽 은행의 상당수가 당국의 보수적 기준보다도 높게 부도율을 설정해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은행이 잣대로 삼아온 경험 PD 값이 규제 목적 PD 값에 견줘 심한 경우 절반에 불과한 점과 대조된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미국 은행들의 위기 대응 태세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부실채권을 포함한 전체 여신에 견줘 충당금 적립 규모(총여신 대비 커버리지 비율)를 관리하는데 미국 은행의 경우 이 비율이 지난해 12월 기준 1.49%다. 반면 같은 시점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평균 총여신 대비 커버리지 비율은 0.49%로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충당금 산정 개편 논의에 관여한 한 인사는 “미국은 부실채권뿐 아니라 모든 대출을 잠재적 위험군으로 올려놓고 관리하고 있다”면서 “전체 여신 규모가 늘고 있는데 경기가 더 악화하면 이와 맞물려 부실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국내 은행의 대응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 감독 당국은 미국에 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통해 대출 관련 규제를 깐깐히 하고 있다”면서 “국내 은행과 미국 은행 간 위험 상품을 취급하는 비중이 다른 만큼 총여신 대비 커버리지 비율만으로 대응 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은행권 외곽에서 ‘충당금을 더 늘리라’고 주문하던 당국의 감시 수위가 부쩍 높아지면서 은행권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실적을 발표한 KB국민은행은 올해 2분기 신용 손실 충당금 전입액으로 3769억 원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분기(1830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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