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작성부터 서명까지... AI가 법무관리 대신하죠”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3. 7. 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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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관리도 네이버 검색처럼
기업 전문 변호사 출신 임정근 대표
장병탁 교수와 AI 플랫폼 개발
임정근 BHSN 대표
대기업 투자부서에 입사한 A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투자한 기업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투자 관련 배경과 협상 과정을 아는 실무자가 퇴사하면서 포트폴리오와 관련된 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공유받은 PC 폴더에는 많은 계약서가 있지만 현재 유효한 계약이 맞는지, 어떤 내용인지조차 파악이 어려웠다. 계열사간 계약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이슈에 대해 법무부서에 문의해보니 이전에 받았던 검토결과와 다른 답변을 받는 일도 있었다. 통일된 기준에 따른 검토가 필요하지만 개별 법무 담당자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기반해서 처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기업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걷던 임정근 BHSN 대표는 2020년 돌연 회사를 창업했다.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법률 자문을 하면서 사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계약서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ESG 강화, 각종 규제 등으로 법률을 이해하고 계약서를 다루는 능력이 점점 필요해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조차 계약서 관리가 잘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라며 “단절된 사내 내부통제시스템, 계약 프로세스, 주관적인 계약서 관리 등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만큼 이를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든다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국내 인공지능(AI) 석학으로 불리는 장병탁 서울대 교수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상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장 교수님은 자연어 AI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을 같이할 법률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며 “이를 기반으로 BHSN은 AI 법률 언어모델 ‘BHSN-BERT’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BHSN-BERT는 계약서 내 개별 조항 단위까지 확인하고 기업이 지금까지 체결한 계약 데이터를 한눈에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사업부서의 표준계약서 생성부터 법무검토, 조율과 합의 프로세스, 내부 결재, 전자서명, 계약서 보관, 이행관리에 이르는 계약 전 프로세스를 통합 관리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일명 AI 계약관리시스템이라 불리는 이 솔루션은 빠른 입소문을 타고 현재 CJ제일제당 등 주요 대기업이 사용하고 있다. 임 대표는 “지속적인 데이터 생성 및 학습이 이뤄지고 있으며 대형 로펌과 기업 법무팀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직접 데이터 라벨링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국내 유수의 IT대기업과 생성 AI를 기반으로 기업의 법무관리 시스템을 혁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BHSN이 개발한 AI에 특수관계자 거래와 관련된 질문을 하면 계열사간 맺은 계약서를 한 눈에 보여준다. 해당 계약의 이사회 승인 또는 공시 필요 여부도 체크가 가능하다.

이어 ‘불가항력’ 조항이 포함된 계약만 찾아달라고 입력하면 ‘불가항력’이란 키워드는 없지만 같은 의미의 다른 법률용어로 표현된 계약서까지 맥락을 이해하고 찾아준다. 임 대표는 “기업 인수합병(M&A) 또는 상장(IPO) 시 필수적으로 수행하는 기업 실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로펌에 의뢰해 변호사들이 수작업으로 오랜 시간을 투자해 수행하던 업무들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계약관리 솔루션 스타트업은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기업의 계약 프로세스와 데이터를 디지털화된 형태로 통합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의 아이언클래드는 지난해 기준 기업가치가 4조원에 달하고 로레알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미국 1위 전자서명 업체 도큐사인은 계약주기관리 솔루션 스타트업 ‘스프링씨엠’을 인수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이미 구글, 다임러 벤츠, 이케아, 로레알 등 다양한 산업의 많은 기업이 AI 기반으로 계약, 컴플라이언스(준법관리), 법률 데이터를 관리하며 ESG 업무를 디지털화하고 있다”며 “이에 반해 한국의 법무, 계약 관련 디지털화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관리를 시작으로 AI를 기반으로 한 기업의 법률자문 관리, 로펌 및 소송 관리, 전자결재 및 전자서명까지 ESG 가치사슬(value-chain)을 통합 제공하는 회사가 되려 한다”며 “한국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로 충분히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어 “기업의 내부 법률문서 분실과 위변조 방지, 이상 거래 감지, 고객 데이터 유출 방지, 잠재적 횡령 가능성 억제 등이 모두 기업 법무 영역에 AI를 도입함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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