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주변 ‘카르텔’부터 의심하라
최혜정 ㅣ논설위원
김건희 여사 주변에선 유독 ‘공교로운’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것 같다. 7년 동안 추진된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종점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바뀌었는데, 바뀐 종점에 ‘우연히’ 김 여사 일가의 땅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참석차 방문한 리투아니아에선 호객행위로 들어간 상점이 ‘하필이면’ 명품 편집숍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입찰공고 3시간 만에 빛의 속도로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를 수의 계약한 회사는 ‘알고 보니’ 김 여사 사업체 코바나컨텐츠의 후원 업체였다. 우연이 겹쳐진 자리에 남는 것은 의심이다.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 ‘여사 리스크’는 필연적인 결과다.
대통령 배우자의 위상과 권한은 뚜렷한 규정이 없어 언제나 논쟁적이다. 대통령 배우자는 민간인이지만, 동시에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최측근으로서 경호·예우의 대상이 된다. 국내외 주요 행사에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때로는 대통령의 메신저 구실을 한다. 민주적 정당성 없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만큼, 역대 정부에선 여사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을 설치해 대통령 배우자를 통제해왔다. 이 칸막이를 없앤 윤석열 정부에서 김 여사의 행보는 거리낌이 없다. 최근 현지 언론 보도로 드러난 김 여사의 리투아니아 명품 편집숍 방문은 김 여사의 ‘기개’를 재확인한 장면이다. 당시 보도를 보면, 김 여사는 경호·수행원 16명을 이끌고 예고 없이 매장을 찾았고, ‘브랜드가 5개 매장에 분산돼 있다’는 매니저 얘기에 인근 5곳 모두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나랏돈 들여 간 외교 현장에서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공적 책무보다 ‘개인 김건희’의 사적 욕망을 앞세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호객행위 발언으로 공분을 사더니 결국 “정쟁화될 소지가 크다”며 입 다무는 방법을 택했다. 대통령실이든 여당이든 김 여사에게 감히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할 참모조차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간 김 여사는 보안구역인 대통령 집무실 사진을 팬클럽에 공유하고, 순방길에 지인을 대동하는 등 공사가 뒤섞인 상식 밖의 행동을 보여왔다. 석연치 않은 관저 리모델링 업체 계약, 고가 장신구 재산공개 누락 등 숱한 의혹에 대해선 해명 대신 뭉개는 쪽을 택했다. 그러면서 납북자 문제와 개 식용 금지 등 정책 목표를 제시하는가 하면, 지난 4월 넷플릭스 투자 유치 건은 대통령실의 별도 보고까지 받았다. ‘조용한 내조’는커녕 국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양새다. 최근 불거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은 윤 대통령의 처가 문제가 정부 차원의 위험 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김 여사 일가의 땅이 몰려 있는 강상면 일대로 종점이 바뀌면서 제기된 특혜 시비는 자료 전면 공개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맹활약’에도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통장 잔고를 위조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윤 대통령의 ‘처가 리스크’가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의 가족은 관리·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통령 배우자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제어하는 제2부속실은 ‘공약 파기’를 이유로 논외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제2부속실 폐지는 ‘대통령 배우자는 가족일 뿐 공적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약속한 것이지, 전제를 파기해놓고 결론만 고수하는 것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공직기강, 친인척 감찰 등을 맡던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는 대신 특별감찰관 재가동 의지를 피력했지만 취임 이후엔 국회에 공을 넘긴 채 손을 놓고 있다. 지난 1월 공직자 감찰조사팀 신설로 민정수석실 기능 대부분이 되살아난 중에도, 친인척 감찰 업무만 공백 상태다. 김 여사 일가가 현 정부의 ‘성역’이라는 얘기다.
김 여사 논란과 잇따른 ‘처가 스캔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침묵만 고수하고, 대통령실은 해명 요구를 무시하거나 ‘가짜뉴스’ ‘선동’이라는 주장만 반복한다. 국민을 향한 메시지보다 윤 대통령 부부의 ‘심기 경호’를 중시하는 행태다. 윤 대통령은 비판 세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이권 카르텔’이라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김 여사와 처가를 상시 감찰하고 제어할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권 카르텔’ 딱지는 언젠가 윤 대통령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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