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융사 해외진출 멍석 깔렸으니 그 위에서 뛰라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12대 정책과제 중 하나로 '금융 글로벌화를 통한 금융산업 육성'을 제시했다.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는 단골 화두여서 다소 진부한 느낌도 들고, 그동안 의아한 정책도 적지 않았던 터라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금융회사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선 방안'을 보니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금융사의 해외 자회사 인수와 설립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이미 진출한 자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관련 규제도 합리화하는 등 신속하게 구체적 방안이 제시된 것도 좋았고 실제로 기업들을 힘껏 응원하려는 내용이 두드러져 보였다. 2020년 1월 베트남 하노이시에 있는 한국 보험회사 2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고군분투' 하던 모습이 기억나면서 이번 규제 개선 방안이 더욱 반가웠다.
보험산업은 전형적인 규제산업이다. 우리나라의 압축적인 경제 성장과 선단식 행정의 경로 의존성까지 겹쳐 보험산업의 현업 종사자나 정책 입안자는 규제에 익숙해졌다. 규제가 전혀 필요 없거나 무익한 것은 아니나, 쉽게 사라지지 않은 채 대부분 사회 변화의 동력이나 혁신과 충돌하는 속성이 있다. 사회와 환경이 바뀌면 규제도 바뀌어야 한다. 이번 조치를 보면 규제산업의 대명사처럼 여겼던 보험산업에서 매우 신속하게 합리적 규제 완화를 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
우리나라 보험산업 규모가 세계 7위라고 하지만 글로벌화 면에서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2013년 7월 금융안정이사회(FSB)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6개국 9개 보험그룹을 중요한 글로벌 보험그룹(G-SIIs)으로 지정하고, 이들을 겨냥한 추가적 감독 규제의 틀을 발표했다. 그 당시 한국 보험 기업은 포함되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무거운 감독을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는 부러움이 앞섰던 기억이 난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보험사들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느끼고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해외에 나가려는 보험사들은 국제적 기준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현지의 갖가지 규제에 따라야 한다. 이것도 힘든 일인데 국내에 적용되는 규제를 현지 진출에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내 기업 환경에 대응하는 규제를 외국 시장까지 끌고 간다면 우리 기업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플레이어로 힘을 소진하게 된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走馬加鞭)'면서 말 꼬리는 마구간에 묶어 두는 기이한 모습이 될 것이다. 이번 정부의 조치는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제 업계가 화답하고 국회가 지원 사격해야 할 때다. 정부가 모처럼 조성한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해외 진출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도록 무진장 노력하여야 한다. 철저한 현지 실사, 최적의 목표 설정, 보험 외 분야까지 포함하는 생태계 조성을 통한 상승적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종합적 위험 관리와 거버넌스로 지속가능한 사업주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변수가 상존하는 해외 진출의 안정성을 제고할 입법 조치가 필요한 경우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본은 2014년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외국 진출 보험사의 부담을 줄여줬고, 그 덕에 지금 일본 모 보험사는 28개국에서 영업하고 있다. 우리 보험사들도 몇 년 안에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선정 한국상사법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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