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면허 업체’에 공사 떠넘기고 자재 대금도 ‘나 몰라라’
자재 납품한 영세업체, 대금 받지 못해 부도 위기 몰리기도
(시사저널=서상준 경기본부 기자, 최연훈 경기본부 기자)
성남위례 민간 참여 공공주택 건설 현장에서도 부실시공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불법 하도급' 논란이 불거졌다. 공사 자재를 납품한 영세업체는 재하도급 업체로부터 2억 원가량의 자재 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했다.
위례 건설 현장은 한국주택도시공사(LH)가 시행하고, GS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논란의 발단은 GS건설 협력업체인 T토건이 부대 토목공사 하청을 받아 다시 T건설산업이라는 중소업체에 '재하도급'을 맡기면서다. T토건이 재하도급을 맡긴 T건설산업은 '무면허 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T토건은 2022년 11월 T건설산업과 재하도급 계약 당시 '무면허 업체'라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계약서가 아닌 약정서를 작성하고, T건설산업의 요청에 따라 인건비와 장비 대금을 직불하는 형태로 공사를 진행했다. T토건은 GS건설로부터 하청받은 부대 토목공사 중 외부 관로공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정(80%선)을 T건설산업에 맡겼다.
T토건은 T건설업체에 공사 재하도를 맡기면서 8억2700만원에 공사 계약을 맺었다. T토건이 GS건설에서 받은 기성금은 약 24억원이다. 이 중 공사를 맡긴 T건설산업에는 추가비용을 포함, 약 11억3000만원(45.8%)을 지급했다. 수치만 보면 대략 13억원의 차액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부실사고 중 불법 재하도급 과정에서 이른바 '후려치기'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T토건 A 임원은 "T토건과 T건설산업의 계약서를 봤을 때 계약서가 아니고, 약정서였다"라며 "(해당 서류만 보면)정식 하도급이 아니고 모작 형태(원본과 유사한 서류)의 계약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라고 해명했다.
'모작'은 외형으로는 대금 지급방식 등을 일용직 노무계약 형태로 진행하면서 노임과 장비 대금 등을 직접 지급하는 형태다. 직영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모작업자가 면허가 없더라도 시공할 수 있지만 이는 불법으로 형사처벌 감이다.
건설산업 기준법에는 원청사나 1차 도급사가 다시 아래로 도급계약을 체결해 공사를 진행하면 부실 공사의 우려가 있어 재하도급 계약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T건설처럼 '힘없는' 건설업체는 이론상 도저히 수익이 나지 않을 구조임에도 다른 공사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의 위험한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조를 보면 시공권을 따낸 GS건설은 T토건에 부대토목공사 '하도급'을 넘겼고, T토건은 다시 '무면허 업체'인 T건설과 매우 낮은 금액으로 재하도급 계약을 맺은 셈이다.
T토건 측 "미수금 직접 지불하겠다는 의미 아니었다"
이런 계약이 가능했던데는 건설업계가 재하도급으로 서로 이득을 보는 일종의 '카르텔'을 만들고 있어서다.
불법 재하도급으로 인한 피해는 소규모 공사 자재 납품업체로 번졌다. 이 현장에 자재를 납품했던 D업체는 2억 원가량의 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GS건설 측은 불법 재하도급에 이르는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GS건설의 토목책임자는 "계약 체결 이후 작업내용과 속도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지난해 11월부터 작업인력이 바뀌었지만, 공사를 계속 진행해 재하도 업체인지는 몰랐다"면서도 "T토건 측에 조속히 문제해결을 하라고 지시했다. 다시 한번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D업체는 지난 3월 GS건설에 미수금을 받게 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T토건 측은 이때만 해도 GS건설과의 협력 관계를 우려했는지 당장 지급할 것처럼 우호적인 모양새를 취했다. 대표이사 직인이 날인된 공문을 통해 T건설에 지급해야 할 잔여 공사대금 3억여 원 중 자재비 1억6889만원을 D업체에 직접 지불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T토건 측은 현재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공문 발송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직접 지불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T토건은 본지에 답변서를 보내 "D업체에 문서를 발송한 사실은 있으나 (미지급 공사대금을)직접 지급하겠다는 것은 T건설산업이 잔여 공사 대금 중에서 D업체에 먼저 지급될 수 있도록 업무협조를 부탁한다는 것이지 D업체에 직접 지불하겠다는 확약이 아니다"라며 지급 의사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D업체는 GS건설의 중재에 따라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믿었는데, 갑작스런 T토건 측 반응에 망연자실한 상태다. D업체 관계자는 "처음엔 GS건설로부터 정산을 받지 못해 대금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고 핑계를 대더니 이제 와 줄 돈이 없다고 한다"면서 "T토건에서 대표이사 직인이 찍힌 공문까지 보내와 (미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철석같이 믿었는데 갑자기 돌변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T토건 측은 GS건설에서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냐는 물음에 "GS건설에서 정산이 늦어서가 아니라, T건설산업 측이 정산업무에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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