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첫 연극 도전 ‘2시22분’…이은결 마술 더해져 오싹오싹
새 집으로 이사한 ‘제니’는 새벽 2시22분만 되면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딸 말고는 아무도 없는 2층 방에서 남자가 걸어다니며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이성적인 남편 ‘샘’은 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제니의 공포감은 커져만 간다. 제니는 집에 놀러온 샘의 친구 ‘로렌’과 그의 애인 ‘벤’에게 2시22분을 함께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연극 <2시22분>은 202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최신작을 한국에 옮겨온 라이선스 공연이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인 아이비가 제니 역을 맡아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했다. 기자가 관람한 지난 23일 공연에서 아이비는 감정의 너울이 심한 제니 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14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내공을 다진 덕에 울음을 터뜨릴 때도 발음이 무너지지 않고 또렷했다. 제니의 상대역인 샘을 연기하는 김지철은 얄밉게 이죽거리는 표정이 배역과 잘 어울렸다.
아이비는 25일 프레스콜에서 <2시22분>을 연극 데뷔작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본을 보자마자 반했고,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예전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주로 뮤지컬에서 활동하다 보니 연극 제안이 별로 없었고, 종종 들어오는 대본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2시22분>은 배우들이 끊임없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스릴러의 재미에만 치중하지 않고 이성과 신념의 대결 구도를 대사에 담았다. 관념론과 실재론을 은유한 토론이 이어진다. 낙후 지역이 개발되고 고급 저택이 들어서며 하층계급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지적한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인물들 사이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복선도 차곡차곡 쌓인다. 영국식 블랙코미디 대사는 잠시 숨 돌릴 여유를 준다. 영화 번역으로 유명한 황석희가 대본 번역과 윤색을 맡았다.
김태훈 연출은 프레스콜에서 “영국 작품을 들여왔지만 사람의 희로애락에 공감하는 것은 언어가 달라도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의 주요 정서는 유지하면서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윤색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대본 자체가 스피디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재미를 느꼈어요. 극에서 정박자를 덜어내며 예측 못할 호흡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메시지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주는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유명 일루셔니스트(마술사) 이은결이 마술 감독을 맡아 실감나는 무대 효과를 보여준다. 마술은 합이 정확하게 맞아야 하기 때문에 배우와 스태프의 많은 연습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결말 장면에선 오싹한 마술에 객석 곳곳에서 ‘헉’ 소리가 터졌다. 과학에 대한 회의 없는 태도도 결국 일종의 맹신이라는 냉소적 메시지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의 비명을 닮은 ‘여우 소리’ 음향 효과는 언제 터질 지 몰라 가슴이 졸아든다. 김태훈 연출은 “깜짝 놀라게 하는 음향은 오히려 지양했다”고 말했지만 여우 소리 볼륨은 듣기 불편할 정도로 컸다. 제니 역에 아이비·박지연, 샘 역에 김지철·최영준, 로렌 역에 방진의·임강희, 벤 역에 양승리·차용학이 출연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9월2일까지 공연한다. 공연 시간은 휴식 15분을 포함해 130분. 만 14세 이상 관람가. VIP석 9만원, R석 7만원, R시야제한석 6만원, S석 5만원. 끝까지 연극을 즐기기 위해선 스포일러를 조심해야 한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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