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 열풍’ 확산 가운데…극단주의 거부한 스페인
유럽의 극우 돌풍에 스페인이 제동을 걸었다. 지난 몇년 간 유럽에 번지고 있는 극우 물결을 타고 스페인에서도 이번 총선으로 극우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돼 왔지만, 스페인 유권자들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가장 눈에 띈 결과는 보수 성향인 국민당(PP)의 예상 밖 부진과 극우 정당 복스(Vox)의 참패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 지표를 바탕으로 국민당은 압도적인 승리와 정권교체를 꿈꿨고, 복스는 국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프랑코 독재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에 입성하는 극우정당이 되리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민심은 달랐다. 국민당이 전체 350석 중 13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긴 했지만 압승은 커녕 과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지난 총선에서 52석을 확보하며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보수 정당으로 떠오른 복스는 이번 선거에서 33석에 그쳐 거의 절반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이에 따라 현재로서는 좌·우 그 어느 쪽 진영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연정 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탈리아 매체 라레푸블리카는 1면 머릿 기사로 스페인의 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제목을 “유럽의 안도감”이라고 뽑았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총선에서는 이례적으로 극우 정당이 참패한 것에 주목한 것이다.
무솔리니 이후 100년만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극우 정부를 탄생시킨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이번 스페인 총선에서 복스의 선전을 누구보다 기대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복스가 승리하면 반이민 정책에서 스페인 정부와 공동 전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멜로니 총리는 선거를 앞두고 복스에 지지 영상 메시지를 보내 “애국자들을 위한 시간이 왔다. 당신들(복스)의 승리는 모든 유럽에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 후에는 산티아고 아바스칼 복스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중해 지역에서 (우리에게) 우호적인 정부를 갖지 못하게 돼 유감”이라며 패배를 위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스페인 총선 결과를 놓고 스페인이 유럽에서 ‘진보의 보루’ 역할을 해왔으며, 이번 총선에서도 극우 세력의 부활에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스페인에선 1936∼1975년 프랑코 독재 이후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금기시 돼왔다. 스페인은 ‘민주주의 기억법’ 등을 통해 프랑코 독재 정권 찬양 행위나 깃발을 흔드는 행동까지도 처벌할 수 있다.
복스는 2017년 말 확산된 카날루냐 독립 운동에 대한 반감 등 민족주의를 이용해 성장해 왔으며 반이민, 반페미니즘, 반성소수자 등 강경 극우노선을 내세워 스페인 3번째 정당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복스의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이 오히려 스페인 유권자들을 겁 먹게 했고, 그 결과 유럽의 정치적 극우 물결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드리드 카를로스 3세 대학의 파블로 시몬 교수는 “복스가 정부에 입성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그동안 잘 투표하지 않던 좌파 유권자들을 투표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자유주의 진영은 이번 스페인 총선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다가오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선거에서도 극우 세력이 타격을 받고, 중도 세력이 승리할 수 있다는 고무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이번 스페인 총선에서는 복스뿐 아니라 강경 좌파 정당들 역시 이전 선거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스페인 유권자들이 좌우 모두 양 극단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