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방출 아픔 딛고 극강 마무리 된 볼티모어의 '산' 이야기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지난주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마침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 탬파베이 레이스를 따라잡았다. 한때 경기 차가 꽤 벌어졌지만, 7월 두 팀의 행보가 엇갈리면서 승차가 사라졌다. 볼티모어는 '최고 중 최고'를 가리는 탬파베이와 4연전 맞대결도 3승1패로 시리즈 우위를 점했다.
물러설 수 없었던 두 팀의 시리즈는 기선 제압이 중요했다. 실제로 1차전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볼티모어가 탬파베이를 한 점차로 꺾었다. 볼티모어는 2차전을 내줬지만, 3차전과 4차전을 내리 승리했다. 시리즈 4경기가 모두 석 점차 이내 승부였다.
1차전 : 볼티모어 4-3 탬파베이 [10회]
2차전 : 볼티모어 0-3 탬파베이
3차전 : 볼티모어 6-5 탬파베이
4차전 : 볼티모어 5-3 탬파베이
1차전 볼티모어는 연장 10회 초 승부치기 규정에 따라 2루에 주자를 두고 출발했다. 보통 먼저 공격하는 원정 팀의 경우, 2루에 주자가 있다고 해도 번트 시도를 하지 않는다. 한 점을 뽑는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볼티모어는 애덤 프레이저의 번트로 2루 주자를 3루에 진루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프레이저의 보내기 번트가 성공한 볼티모어는 다음 타자 콜튼 카우저가 3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희생플라이를 때려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추가점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티모어 덕아웃은 '한 점이면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마무리 펠릭스 바티스타가 있기 때문이었다.
9회 말에 올라와 공 9개로 이닝을 정리한 바티스타는 10회 말에도 등판했다. 마찬가지로 2루에 주자를 두고 시작했다. 바티스타는 첫 타자 루크 레일리를 초구 몸맞는공으로 내보내 흔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볼티모어 선수들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다. 바티스타를 믿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티스타는 믿음에 보답했다. 랜디 아로사레나를 삼진으로 처리한 뒤 브랜든 라우를 병살타로 돌려세워 순식간에 경기를 끝냈다. 10회 말 투구 수는 9회보다 적은 6개였다.
1차전 승리투수가 된 바티스타는 3차전과 4차전은 각각 한 점차, 두 점차 리드를 지켰다. 4차전은 탬파베이의 저항이 있었지만(2안타)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탈삼진으로 채웠다. 바티스타의 시리즈 성적은 3경기 1승 2세이브, 4이닝 무실점 8탈삼진. 만약 이번 맞대결이 포스트시즌이었다면 시리즈 MVP로 선정돼도 손색이 없었다.
이번 시즌 볼티모어는 바티스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강력한 불펜을 앞세워 지키는 야구로 승리를 거둔 경기가 많았다. 만약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져야 할 투수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면 볼티모어의 항해는 초반부터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티스타가 불펜의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다른 불펜 투수들도 보직이 고정될 수 있었다.
바티스타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15년 20살의 바티스타는 팀에서 방출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원래 바티스타는 마이애미 말린스가 먼저 발견했다. 마이애미는 바티스타의 재능을 알아보고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바티스타가 루키리그에서도 적응하지 못하자 재빨리 포기했다. 도미니카 서머리그에서 바티스타의 성적은 12⅓이닝 17실점, 볼넷 20개였다. 이에 2015년 바티스타는 야구를 떠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야구는 하지 않았지만, 야구를 지우지는 않았다. 볼티모어 지역 매체 '볼티모어 선'에 따르면, 그 해 바티스타는 어머니와 함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린 미인 대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 대회에서 우승한 클라리사 몰리나는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누구든지 꿈을 원한다면 그 꿈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래야 꿈을 이뤄낼 수 있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생각에 잠긴 바티스타에게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라고 말했다.
다시 동기부여가 생긴 바티스타는 야구로 돌아왔다. 세 가지 선택지 속에 바티스타가 고른 것은 볼티모어 입단이었다. 볼티모어는 인내심을 가지고 바티스타를 육성했다. 바티스타 역시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바티스타는 2018년이 되어서도 루키 리그를 벗어나지 못했다. 2019년은 싱글A에서 뛰었는데, 2020년 코로나19로 마이너리그가 전면 취소되는 바람에 또 시간을 허비했다.
2021년 바티스타는 탄력을 받고 트리플A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지난해 마침내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4월 11일 데뷔전에서 선발 타일러 웰스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바티스타가 만난 첫 상대는 다름 아닌 탬파베이였다. 바티스타는 완더 프랑코에게 메이저리그 첫 탈삼진, 최지만에게는 메이저리그 첫 피안타를 기록했다. 한편, 바티스타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때마침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첫 탈삼진 기념구가 어머니에게 안겨준 생일 선물이었다.
지난 시즌 중반 볼티모어는 마무리 호르헤 로페스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바티스타가 마무리 자리를 물려 받았다. 바티스타는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마무리에서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
바티스타 시즌 성적 비교
22 : 65경기 15세이브 ERA 2.19 WHIP 0.93
23 : 45경기 28세이브 ERA 0.92 WHIP 0.86
바티스타는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9.3마일에 달한다. 최고 구속은 무려 103.4마일을 찍었다. 2미터 장신(203cm)에서 나오는 100마일 공은 더 위협적이었다. 올해 포심 비중이 70%가 넘지만, 워낙 구위가 강력해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피안타율 0.144). 여기에 평균 구속 88.3마일의 떨어지는 스플리터가 타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최상급 구종을 두 개를 장착한 바티스타는 탈삼진을 쓸어담고 있다. 49이닝 96탈삼진으로, 9이닝 당 환산하면 17.63개다. 단일 시즌 9이닝 당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한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는 2014년 아롤디스 채프먼이다. 당시 채프먼은 54이닝 106탈삼진으로, 9이닝 당 17.67개였다. 바티스타가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수준이다.
단일 시즌 불펜 9이닝 당 최다 탈삼진
17.67 - 아롤디스 채프먼(2014)
17.63 - 펠릭스 바티스타(2023)
16.66 - 크렉 킴브럴(2012)
16.43 - 크렉 킴브럴(2017)
16.41 - 조시 헤이더(2019)
*2020년 단축 시즌 제외
큰 키의 바티스타는 별명이 'The Mountain'이다. 그래서 바티스타가 등장하면 "It's Mountain Time"을 외친다. 한때 야구를 관두려고 했던 거구의 마무리는 이제 볼티모어를 지키는 높은 산이 됐다. 볼티모어는 높은 산과 함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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