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무력화' 첫 단추 꿴 네타냐후, 이스라엘의 '절대권력'으로?
국내외 논란 속에 24일(현지시간) 사법부 권력 약화를 위한 첫 번째 법안 통과로 정부 권력 강화 시동을 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향후 행보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은다. 주요 지지세력인 극렬 민족주의자와 유대교 정파들의 입맛에 맞춰 이스라엘을 신정국가로 끌고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외신들은 이번 법안 외에도 연정 의원들이 의회 120석 중 과반 찬성으로 법원 판결을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는 법안도 가결시킬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총리는 지난 6월 사법부의 판결을 입법부가 뒤집을 수 있게 하는 안은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의회가 대법관 지명권을 독점하는 것과, 장관들이 법률보좌직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는 요건을 삭제하는 법안도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네타냐후 총리 지지 세력들이 사법부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정치적, 종교적 이유 때문이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2005년 팔레스타인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단독 철수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 우파들은 이 결정을 아직까지 용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설치하고 주변에 장벽을 세우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영토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은 고립됐고, 인권단체가 "열린 감옥"이라며 규탄할 정도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법원은 네타냐후 총리의 정착촌 정책에 대해 여러 번 반대 입장을 표해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민족주의, 종교주의를 기반으로 독재 체제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은 성문헌법이 없어 대법원 판결이 행정부와 의회를 통제할 유일한 수단이다. 의회가 대법원을 장악한다면 선거를 통한 독재가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이에 CNN 등 다수의 언론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비리 혐의에 대한 재판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가디언은 네타냐후 총리가 측근인 아르예 데리부터 정계에 복귀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르예 데리는 2018년 내무장관 시절 난민 추방 정책을 공표했던 유대교 강경파 인사다. 이스라엘 대법원이 범죄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장관직 임명을 금지한 바 있다.
한편 사법부 무력화 관련해 시민들이 29주 연속으로 시위를 펼쳐온 가운데, 첫 법안 통과 이후 수도 텔아비브, 예루살렘 등지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경찰이 진압에 나섰다. 이스라엘 현지매체 더타임즈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시위대는 타이어를 불태우는 등 약 6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충돌해 경찰관 1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대 18명이 경찰관을 공격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스라엘 사회 각계와 유대인단체들도 비판에 나섰다. CNN에 따르면 이스라엘변호사협회는 대법원이 사법부 무력화 법률안 통과를 취소해야 한다며 법률 대응에 돌입했다. 공군 예비역 1000명도 대법원이 정상화될 때까지 복무를 거부하겠다고 했다. 미국유대인협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을, 이스라엘정책포럼(IPF)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심각하게 저해됐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도 이날 "오늘 이스라엘에서 투표가 최소한의 다수로 치러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성명을 냈다. 하루 전인 23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사법 정비를 서두르지 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미국은 올해 들어 이스라엘과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상태인데, 지난 18일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를 재집권 7개월여 만에 미국으로 초청하며 관계 회복을 꾀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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