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희생 제대로 예우받길"…국립묘지 기다리는 우크라 유족
전사자 유족들 "가장 소중한 목숨 바쳐…가치있게 기념돼야"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우크라이나 청년 드미트로 구바리에우는 지난해 4월 15일 우크라이나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 전투에서 사망했다.
드미트로의 유해는 넉 달이 지난 그해 8월 말에야 확인돼 가족 품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가족은 그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함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왔다. 정부가 약속한 국립군인묘지에 안장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가족이 기다린 시간이 벌써 1년이 돼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는 10년 넘게 국립군인묘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그러다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5월 의회가 국립군인묘지 설립을 위한 법률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올해 3월에서야 키이우 외곽에 있는 20에이커의 삼림 지대를 부지로 선정했다고 밝혔으나, 아직 공사는 시작도 못 했다.
드미트로의 어머니 이리나 구바리에바(52)는 NYT에 "9월이 되면 아들 유골이 매장을 기다린 지 1년이 된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문할 무덤이 없다는 사실에 한탄했다.
이리나는 "신원이 확인된 드미트로 전우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들 모두 안장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며 "전사자 가족들은 이 국립묘지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영웅적인 일을 하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면서 "우리 가족들은 그들의 죽음이 가치 있게 기념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런 사정은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빅토리아 크라소우스카도 마찬가지다.
빅토리아와 군인이었던 비탈리 크라소우스키는 2021년 10월 법적으로 결혼했고, 작년 여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으로 부부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비탈리가 배치된 마리우폴은 연일 러시아의 포격을 받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빅토리아는 3월 18일 어렵게 연결된 비탈리와의 통화에서 울음을 겨우 참으며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비탈리는 "약속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그것이 부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 비탈리는 숨졌다.
빅토리아가 남편의 유해를 돌려받는 데에도 3개월이 걸렸다. 남편의 다리에 새겨진 문신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역시 국립묘지 안장을 기다리며 유골함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
그나마 가끔 유골함을 배낭에 넣어 시어머니 집으로 가져가 작은 신전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빅토리아는 "남편을 민간인 공동묘지에 묻는 건 무례한 일"이라며 정부가 왜 서둘러 국립묘지를 조성하지 않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그녀는 "정부에게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묘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는 건가"라며 "전사자 가족과 군인들이 제대로 예우받고 묻힐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리나, 빅토리아 같은 전사자 유족은 국립묘지 조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정부 관계자들에게 편지도 쓰고 있다. 최근 키이우에서 열린 시위에는 2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율리아 라푸티나 우크라이나 보훈부 장관은 NYT의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묘지 건설 속도는 토지 할당 문제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과 동료들이 "전사한 영웅들의 가족과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고, 그들의 요구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빅토리아는 "우리 군인들은 가장 소중한 그들의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그들이 기억될 수 있도록 합당한 방식으로 묻어줘야 한다"며 "우리는 앉아서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san@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의문의 진동소리…옛날 가방 속 휴대폰 공기계 적발된 수험생 | 연합뉴스
- YG 양현석, '고가시계 불법 반입' 부인 "국내에서 받아" | 연합뉴스
- 야탑역 '흉기난동' 예고글…익명사이트 관리자의 자작극이었다 | 연합뉴스
- 아파트 분리수거장서 초등학생 폭행한 고교생 3명 검거 | 연합뉴스
- [사람들] 흑백 열풍…"수백만원짜리 코스라니? 셰프들은 냉정해야" | 연합뉴스
- 머스크, '정부효율부' 구인 나서…"IQ 높고 주80시간+ 무보수" | 연합뉴스
- '해리스 지지' 美배우 롱고리아 "미국 무서운곳 될것…떠나겠다" | 연합뉴스
- [팩트체크] '성관계 합의' 앱 법적 효력 있나? | 연합뉴스
- "콜택시냐"…수험표까지 수송하는 경찰에 내부 와글와글 | 연합뉴스
- 전 연인과의 성관계 촬영물 지인에게 보낸 60대 법정구속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