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총기 수출이 세계의 총기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이윤정 기자 2023. 7. 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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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6일 태국 북동부 농부아람푸주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장소인 어린이집 밖에서 한 여성이 오열하고 있다. 농부아람푸 |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태국 북동부 농부아람푸의 한 어린이집에서 전직 경찰이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23명을 포함해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범죄를 일으킨 살인자는 미국에서 제조된 시그사우어의 P365 권총을 들고 있었다. 시그사우어는 P365가 바지나 자켓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을 수 있는 초소형 모델이지만 한 번에 13발을 장전할 수 있어 ‘365일 들고다닐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당시 사고 이후 태국의 허술한 총기 관리 시스템이 도마에 올랐지만, 사실상 총기사고와 폭력을 부추기는 건 각국 정부에 로비를 벌여 돈벌이를 하는 미국 총기 제조업자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시그사우어와 같은 미국의 총기 제조업체들이 미국을 넘어 해외에서 새로운 구매자들을 확보했고, 미 정치권이 이들의 판매를 부추기고 있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통계국 등에 따르면 2005~2022년까지 미국에서 해외로 수출된 반자동 총기(권총·소총)는 약 370만정이다. 반자동 총기 수출량은 2005년 5만4000여건에 불과했지만, 최근 6년 사이 크게 늘었다. 총기 제조업체들의 본격적인 정치권 로비가 시작되면서 규제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미국에서 총기 판매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이후다. 미국에서는 1994년 한시적으로 공격용 무기 금지 법안이 10년 간 시행됐다. 하지만 2004년 관련 법안이 만료된 후 국내는 물론 해외 총기 판매량까지 급증했다.

총기 업체들의 꾸준한 로비 결과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소형 무기 수출에 대한 감독권을 국무부에서 기업 친화적인 상무부로 이양했다. 이후 반자동 소총·권총 등 소형 무기는 수출 통제를 받는 미 군수품(USML) 목록에서 제외됐다. USML을 수출하려면 국무부 허가와 의회 통보를 거쳐야 하지만, 상무부는 이같은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당시에도 미국의 무기가 적이나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과 함께 무기 거래에 대한 투명성 저하, 의회의 감독기능 상실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이후 소형무기 감독권을 다시 국무부로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느슨해진 미국 총기 수출법을 활용하기 위해 다국적 무기 제조업체들이 미국으로 향했다고 지적했다. 시그사우어의 모기업인 스웨덴 기업 ‘시그’는 미국 정부의 수출 정책에 발맞춰 독일의 공장을 폐쇄하고 미국 뉴햄프셔 공장을 확장했다. 지난 10년 간 시그사우어는 93만5000정 이상의 총기를 수출하면서 미국 최대 총기 수출업체로 성장했다.

문제는 사실상 민간인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세계 각국에 미국산 총기가 쏟아지면서 총기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그사우어는 2017년 태국 당국과 대규모 총기 계약을 맺었고, 이후 미국산 소형 무기가 태국에 밀려들어갔다. 이 시기 태국에서 총기 관련 종사자는 2016년 3만4043명에서 2021년 4만8509명으로 43% 급증했다.

태국에서 총기 소지 규정은 일반 시민에게 엄격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경찰, 군인은 원하는 만큼 값싸게 총을 구입할 수 있다. 군경은 값싸게 손에 넣은 무기를 다시 암시장에 팔고 있고, 일반인들은 신분을 위조해 총기를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 경찰은 무기 일부가 라오스로 밀수됐고, 최근 태국 내 갱단으로 2000여정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얼마나 많은 미국산 무기가 범죄조직이나 범죄자 손에 들어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에 따르면, 북미 이외 지역 범죄 현장에서 회수된 총기의 37%가 미국 정식 수출품이었다. 미 민주당 호아킨 카스트로 하원의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결국 무기 수출 감독기관을 다시 국무부로 바꾸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실상 총기 제조업자들에게 준 선물이 지금까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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