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집, 투기대상 아냐" 발언 사라져…힘빠진 '공동부유'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원 24명이 논의해 24일 내놓은 7월 회의 발표문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창해온 '공동부유' 기조를 일견 거스르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 주목된다.
'내수 부진'과 '부동산 리스크'를 중국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주요 변수로 보고,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공동부유와 궤를 달리하는 대책을 주문한 것이다.
중앙정치국은 발표문에서 자동차·전자제품·가구 등 상품과 체육·레저·문화·여행 등 분야의 서비스 소비 확대를 포함한 내수 부진 타개책을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를 위해선 알리바바·텐센트(텅쉰)·메이퇀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아울러 부동산 시장 제한 완화라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성중촌(城中村·도시 외곽에 이주민이 모여 만든 환경이 열악한 주거지구) 개조 사업 등에 대한 대출은 물론 주택 건설·공급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수년 동안 빅테크·부동산에 대한 고강도 통제·제재를 '모두 잘 살자'는 공동부유의 핵심 정책으로 삼아온 중국 당국이 최근의 경제 부진을 맞아 방향 전환을 꾀하는 모습이다.
경제 불균형 해소할 공동부유 정책, 경제위기 속 '멈춤'
공동부유가 시 주석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시 주석은 2021년 8월 공동부유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하겠다고 주창해왔다.
그러나 공동부유 슬로건은 중국 경제 상황의 변화에 맞춘 자구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되짚어보면 시 주석은 집권 초기엔 공동부유를 거론하지 않았다. 시 주석이 권좌에 오른 제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린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간 6.7∼7.9%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이 변했다. 2018년부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강도 높은 무역 분쟁을 시작해 중국산 수출품에 최고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첨단 반도체·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중국 배제 전략을 본격화했다.
이로써 중국 경제의 주력인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때문에 중국은 2020년부터 수출 대신 '내수'를 중심에 두는 이른바 '쌍순환' 전략을 택했다. 14억명 거대 시장을 둔 내수로 성장하겠다는 승부수였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본격화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2020년 2.2%, 2022년 3.0%로 추락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의 경제적 불균형이 사회불안 요인으로 등장했다.
시 주석이 공동부유를 주창하고 나선 것은 이즈음이다. 그는 작년 10월 제20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도 "분배 제도는 공동부유를 촉진하는 기초적 제도"라고 강조한 바 있다.
공동부유의 기치 아래 부동산은 투기를 조장하는 재화로 인식됐고, 빅테크는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막대한 부를 쌓는 거대 기업으로 찍혀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고 반등할 것으로 여겨졌던 중국 경제가 오히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향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경제 위기 中, 급한 불 끄기…공동부유와 거리두기
중국 안팎에선 시 주석이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경고성 슬로건이 이번 7월 중앙정치국 회의 발표문에서 빠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문구는 2016년 중앙정치국 회의 발표문에 처음 등장한 이후 빠진 적이 거의 없으며, 특히 2019년부터 매년 4월과 7월 중앙정치국 회의 발표문에는 꼭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례적으로 이 문구가 빠진 것을 두고 외신은 시 주석이 위기에 처한 부동산 시장 살리기로 선회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사실 최근 1∼2년 새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말 그대로 '가사 상태'다.
부동산 거품을 우려한 중국 당국의 투기 단속으로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恒大·에버그란데)가 2021년 말 도산 위기에 처한 데 이어 중국 내 대다수 부동산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로 허덕여왔다.
5년 주기의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작년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앞두고 한때 부동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일기도 했지만, 중국 당국은 부양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7월 중앙정치국 회의 결과의 후속 대책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5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소비 진작, 지방정부 부채 해결 방침과 함께 위기에 처한 부동산 부문에 더 많은 지원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 당국의 그간 태도로 볼 때 대규모 부동산 부양책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지방부채 대응책과 함께 부동산 부문 지원 대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당국의 빅테크 살리기 의지도 분명해 보인다.
앞서 인민은행법, 자금세탁방지법, 은행업감독관리법 등을 적용해 알리바바 계열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과 자회사들을 조사해온 인민은행 등은 지난 7일 조사를 종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당국은 빅테크와 협력해 내수 부진 타개를 꾀하는 한편 첨단기술 개발을 촉진해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전략에 맞선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민간경제 발전·성장 촉진에 관한 의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공정 경쟁의 제도적 틀과 정책 실시 메커니즘을 완비해 소유제별 기업(국유·민간·외자기업)을 동일하게 보고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투자·내수 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간기업을 국유기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대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유기업을 우선시해온 공동부유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처럼 중국 당국은 최근 경제 부진에 봉착하면서 공동부유 정책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中, 상황 호전되면 다시 공동부유 정책 강화 가능성
성장보다 분배에 방점을 둔 공동부유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대책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으로 이미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된 중국은 2021년 1인당 GDP가 1만2천달러(약 1700만원)에 달해 절대 빈곤에선 벗어났지만, 빈부 격차와 도농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언제든 되살아날 활화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내 외국기업들은 중국이 최근의 경제 부진을 극복하고 나면, 공동부유 정책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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