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좀 보내주세요”...해외학술지 못 보는 출연연 연구자들
관련 법률 없어 기관마다 구독, 운영 차이 커
글로벌 연구 트렌드 뒤처져…재원 조달, 활용 방안 마련해야
얼마 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이 연구자는 논문을 한 번 읽어봐야 설명을 할 수 있다며 기자에게 논문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학술지 구독이 여의치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이언스는 네이처와 함께 국제학술지의 양대 산맥이다. 전 세계 연구 트렌드를 확인하고, 최신 연구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국제학술지를 보는 건 필수인데 이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료에 관한 제도가 미흡해 연구 현장의 혼란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이 매년 학술지 구독에 사용하는 비용이 약 2000억원에 달하지만, 제대로 된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기관마다 학술지 구독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 연구 지원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와 과학계에 따르면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료 예산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십수년째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5월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료 사용 현황과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료 예산 관련 법안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25개 출연연 중 17곳 정도가 기본사업의 연구활동비(직접비)로 학술지 구독료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본사업의 연구지원비(간접비)로 학술지 구독료를 내는 출연연은 3곳 정도였다. 수탁사업비를 이용해 학술지 구독료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출연연이 학술지 구독료를 내는 방식이 제각각인 건 법 체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르면 학술지 구독료를 직접비와 간접비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사업 연구개발비 사용 규정에서는 간접비로 구독료를 낼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권성훈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일부 출연연에서 규정을 위배한 집행이 확인됐으나,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에 맞지 않는 법률과 규정을 고칠 필요가 있다”며 “최근에는 특정 학술지만 구독하기보다는 패키지 형태로 계약해 기관 전체가 누리는 사례가 많은 만큼 이를 반영해 간접비로 처리하도록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를 재정비하는 동시에 재원 확보와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한준호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국제 협력 연구와 연구 분야의 융합이 강조되는 연구 환경에서 최신 연구 자료를 확보하려면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 관련 의무 조항이 필요하다”며 “예산 처리 방식과 더불어 재원 마련, 활용 방안에 대한 규정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 정책은 기관별로 천차만별이다. 법률로 정해진 게 없다보니 기관별로 자체 규정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일부 출연연은 모든 분야의 국제 학술지를 구독해 연구자들이 분야와 관계 없이 논문을 볼 수 있게 하고 있지만, 몇몇은 전문 분야 학술지만 구독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여러 분야가 결합한 융복합 연구가 많다 보니 일부 분야 학술지만 구독하면 놓치는 연구 결과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최근 수년 동안 융합 연구가 강조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동향을 파악해야 하는 만큼 기관에서 구독하지 않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읽어야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며 “이 경우 다른 기관의 연구자에게 논문을 요청하거나 직접 저자에게 연락해야 해 불편함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그간 출연연에서 학술지 구독은 그저 관성적으로 하는 업무였다”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출연연의 학술지 구독 기준과 예산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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