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기록 유출 이어 변호인 해임 논란, 산으로 가는 이화영 재판
수사 검사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들 벌어져…재판 독립성 훼손 우려돼"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재판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과의 연관성을 일부 인정한 것을 기점으로 부인과 의견 충돌을 보이면서 급기야 변호인단이 재판 당일 불출석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25일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41차 공판은 별다른 진전 없이 오전 20여분, 오후 10여분 등 총 30여분 만에 끝났다.
당초 이날은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 측 재주신문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인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들이 모두 불출석하면서 이 전 부지사를 대리할 변호인이 법정에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광은 전날 이 전 부지사의 부인이 남편 동의가 없는 변호인단(법무법인 해광) 해임신고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날 재판을 앞두고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 전 부지사는 오전 재판에서 재판부에 "집사람이 오해하는 것 같다. (해임 건은) 제 의사가 아니다"라며 해임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방청석에 있던 부인 A씨는 "당신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정신 차려야 한다"고 소리치며 "자기가 검찰에 회유당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고 정말 답답하다"고 발언하며 의견 대립을 보였다.
이 전 부지사와 부인 간 입장차는 지난 18일 40차 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가 기존의 입장 중 일부를 번복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해광 소속 서민석 변호사는 "피고인은 그동안 도지사 방북 비용 대납 요청 여부에 대해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검찰 피의자 신문에서) '쌍방울에 방북을 한번 추진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재판부에 설명했다.
이 전 부지사는 방북 관련 이 대표에게 두차례 보고했다고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지사 부인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탄원서를 통해 "남편이 고립된 채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이 전 부지사의 달라진 진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인권위원회·법률위원회(이하 검찰독재정치탄압위) 박범계·주철현·김승원·민형배 의원 등 4명은 수원지검에 항의 방문해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에 대한 반인권적 조작 수사와 거짓 언론플레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전 부지사 재판을 둘러싸고 재판 당사자가 아닌 외부에서 촉발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3월엔 이 전 부지사의 재판 속기록(녹취록)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 SNS에 게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대표가 3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가짜뉴스 생산과정'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 김 전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A씨의 1월 27일 진행된 재판 증인신문 조서 사진을 첨부한 것이다.
같은 달 22일 민주당의 기자회견문에 검찰 수사 자료(증거자료)가 그대로 사용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은 '드러난 증거는 무시하고 답정기소(답이 정해진 기소)한 쌍방울 수사, 검찰은 북풍 조작 수사를 멈추십시오' 기자회견문 말미에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의 IR(투자유치) 자료를 첨부했는데, 이는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자료였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인 법무법인 해광 측은 법정에서 "피고인의 검찰 수사 입회 변호사인 현근택 변호사가 기록을 알아야 한다고 해서 준 적 있다"며 "그분이 어떤 이유로, 어떤 경로로 (민주당에) 줬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검사가 제공한 재판 관련 자료를 사건 또는 소송 준비 이외의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부하거나 제시해선 안 되면, 위반 시 징역 1년 이하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검찰은 현재 재판 기록 및 증거자료 유출 의혹 고발장을 접수하고 조사 중이다.
이날 공전한 이 전 부지사의 재판 말미에 검찰은 "검사로서 외부 세력에 의한 재판의 독립성 훼손이 심각히 우려된다"며 작심한 듯 발언했다.
이 전 부지사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공공수사부 박상용 검사는 "검사 개인으로서 다른 재판 경험이 많지만, 이제까지 전혀 경험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예를 들면 수사 기록이 유출된다든지, 증인신문 녹취록이 SNS로 공개·개시된다든지, 이제는 변호인이 불출석한다"고 이어갔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법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재판마저도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피고인 이익을 위해 헌법상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해 재판장이 절차 진행에 있어서 각별히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young8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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