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3천만원 스위트룸, 두바이관광청 사람들만 신난 거 아닐까('브로앤마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3년을 K-예능의 원년으로 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넷플릭스는 지난 4월 '예능 마실'이란 자리에서 새로운 비전과 계획을 공개하며 <사이렌: 불의 섬>, <19/20>, <좀비버스>, <데블스 플랜>, <솔로지옥3> 등의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티빙도 연초부터 기어를 올렸다. 1월에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여행예능 <두 발로 티켓팅>, 침착맨과 주호민 콤비를 앞세운 <만찢남>을 내놓았고,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는 <마녀사냥2023>, <결혼과 이혼사이2>를 비롯해 서바이벌 예능의 고전 <크라임씬 리턴즈>까지 준비 중이다. 연애예능에 집중하던 웨이브도 <피의 게임2>로 잠시나마 관심을 끌었다. 또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tvN <2억9: 결혼전쟁>처럼 OTT 홍보를 주력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연애예능 포함, OTT발 예능의 공통점은 기존 방송 예능에 비해 스케일업한 규모다. 그런 까닭에 방송과는 다르게 스케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 수 있는 서바이벌 콘텐츠가 주요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한국 OTT 예능에서 눈길을 끄는 한 가지가 <런닝맨>의 유산이다. 워낙에 아시아권에서 큰 사랑을 오래도록 받은 예능이라 그런지 2018년 시작한 넷플릭스 예능 <범인은 바로 너> 시리즈, 2021년 디즈니 플러스의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과 이듬해 나온 <더 존: 버텨야 산다> 시리즈까지 제작진, 출연진 연출 스타일과 예능 장치 모든 면에서 <런닝맨>의 분위기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프로그램이 거듭 나오고 있다. 실제 성과에 대한 판단도 분명 있겠지만, <런닝맨>은 OTT업계에서는 일종의 마패처럼 작용하며 K-예능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
SBS가 국내 OTT(티빙)와 처음으로 협업해 제작한 <브로 앤 마블>은 위의 두 가지가 합쳐진 프로그램이다. 스케일업에 방점이 찍혀 있는 <런닝맨>류의 콘텐츠다. 이승기가 MC를 맡아 진행하고 지석진과 유연석, 이동휘, 규현, 세븐틴 멤버 등이 두바이에서 적지 않은 현금을 지원받으며 '부루마블' 게임을 한다. 부루마블 게임을 차용한 설정은 김태호 PD가 먼저 건드려 살짝 김이 빠지긴 했으나 현금을 걸고 진행하는 게임 버라이어티로 그 돈으로 실제로 두바이 곳곳을 누비며 즐기며 초호화 여행 코스를 소개해주는 볼거리로 차별화한다.
그런데 말하자면, <런닝맨>류 OTT 예능의 문제점은 아무리 캐스팅에 변주를 주고 스케일업을 하고 신기술을 도입해도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신규 예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브로 앤 마블>의 경우 출연진은 지석진 이외에 <런닝맨> 고정 멤버가 없지만 대부분의 출연자가 <런닝맨>에서 게스트로 활약한 적이 있고, 설정을 가미한 출연자의 등장, 불운한 지석진의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BGM의 활용, 판돈을 마련하는 전당포 장면에서 개인기 보여주기, 게임 위에서 티격태격하는 캐릭터플레이를 이끌어내는 가벼운 토크와 기상미션 등등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임에도 <런닝맨>을 보는 것 같은 익숙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마케팅 또한 <런닝맨>의 제작진이 연출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때문에 스케일업의 장점이 딱히 없다. <런닝맨>의 문법을 잘 숙지하고 있는 익숙한 예능 선수들이 펼치는 게임 자체가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고, 역시나 지석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웃음을 피워 올린다. 하지만 <런닝맨>도 많이 안 봐서 문제가 되는 마당에, 현실판 부루마블이 만들어내는 로망과 럭셔리 여행이 과연 어떤 화학작용을 만들어 떨어진 게임 버라이어티의 매력을 상승시킬까?
<브로 앤 마블>은 제작발표회에서 "타 예능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화려한 스케일과 기상천외한 미션"과 "실제 돈을 여행에 접목한 것"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시청자 입장에선 만질 수 없는 현금을 실제로 깔아놓고, 명품 브랜드 이름을 늘어놓고, 롤스로이스 고스트와 개인 헬기 투어, 1박에 3천만 원을 호가하는 버즈 알 아랍의 스위트룸 등등 출연자들이 누리는 호화스런 체험이 그다지 새롭거나 가깝게 체감되지 않는다. 현실을 바탕으로 몰입 가능한 세계관이 중요한 오늘날 예능 콘텐츠에서 과연 이런 접근이 두바이 관광청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매력과 흥미와 몰입을 끌 수 있는 무기가 될지 의문이다.
OTT 예능이 스케일업에 몰두하고 있는 요즘, 마침 가장 뜬 예능 스타는 기안84와 김대호 아나운서다. 이들은 스케일과는 정반대의 수수함이 깃든 '찐 캐릭터'로 시청자들과의 교감을 만들어냈다. 예능의 대세로 자리잡은 유튜브 콘텐츠들도 '진짜' 친밀함을 무기로 삼는 경우가 많다. <브로 앤 마블>의 원형인 <런닝맨>의 에너지도 출연자들의 실제 친분을 바탕으로 펼치는 캐릭터쇼에서 나왔다.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 시즌1이 잘 된 것도 프리지아의 날갯짓에 따라 모든 관계망이 영향을 받는 '진짜'가 포인트였던 것이지 섬 하나를 럭셔리하게 꾸민 게 주효한 게 아니다.
다시 말해 예능 시청자들은 스케일에 압도된 경험보다는 방송을 넘어선 진짜를 보여줄 때, 그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든 경험이 익숙하다. 별다른 고민 없이 스케일업, 화려함의 극치, 신기술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시청자들과 정서적 교감의 여지는 줄어들고, 현실이 아닌 방송의 틀에 오히려 갇히고 만다.
<브로 앤 마블>의 출연진은 나쁘지 않다. 사람 좋은 어리숙함과 진행 능력이 공존하는 MC 이승기, 천연덕스럽게 예능을 잘하는 유연석과 규현, 웃음을 담당하는 지석진과 이동휘, 귀엽고 매력적인 호시와 조슈아 등 출연자들은 모두 자기 몫은 충분히 하고 있다. 두바이를 매력적인 여행지로 보여준 여행 예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 예능 문법의 스케일업을 럭셔리 체험으로 하다 보니 교감의 여지, 신선함의 크기가 크지 않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기에 볼거리나 웃음이 없는 예능은 아니지만, 편집 구성, 자막 등부터 기시감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티빙에서 방영하는 만큼 내수 시장(한국 예능 시청자)을 고려했을 때 익숙함은 아쉬움이다. 2화까지 공개가 된 지금, 부루마블 게임이나, 두바이 럭셔리 여행은 익숙한 예능을 새롭게 바꿔주는 도금이 되기엔 아직까지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과연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은 조세호를 비롯해 어떤 반전과 미션이 숨어 있을까. 초반 평을 뒤집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티빙]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심한 듯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한 ‘남남’이 주는 감동의 실체 - 엔터미디어
- 이생망이 공공연한 시대에 신혜선의 망각 엔딩이 의미하는 것(‘이생잘’) - 엔터미디어
- 어느덧 2회 남은 ‘악귀’, 이제 김은희 작가가 펼칠 진혼곡만 남았다 - 엔터미디어
- 연봉 4천만원 이하 가입불가? 어쩌자고 이런 마담뚜를 버젓이 내보냈나 - 엔터미디어
- 그놈이 그놈 같은 트로트 오디션에 질려버린 당신에게(‘쇼킹나이트’) - 엔터미디어
- 임윤아와 이준호, 어금니 꽉 깨물고 연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킹더랜드’) - 엔터미디어
- 춤과 노래, 먹방엔 진심인 방송사들, 애초에 경각심은 없는 걸까? - 엔터미디어
- 1962년생 톰 크루즈가 맨몸으로 입증한 아날로그의 아우라(‘미션 임파서블7’) - 엔터미디어
- 자위하는 엄마와 목격한 딸, 그게 뭐 어때서라고 묻는 ‘남남’ - 엔터미디어
- ‘지락실2’의 이 기세는 ‘1박2일’ 전성기 때 느꼈던 바로 그 바이브다 - 엔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