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계약서대로" vs "안 올리면 적자"… 분쟁 끝에 시공사와 결별한 조합

정영희 기자 2023. 7. 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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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해지' 초강수 뒀다 재협상… '성남 산성구역'에 무슨 일이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지 모습. 지난 4월 이주와 철거가 완료된 상태다./사진=정영희 기자
최근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공사비 얘기가 빠질 수 없다. 도급계약서를 작성한 이후 준공 과정에서 가파르게 오르는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가 팽팽히 맞서며 갈등이 촉발되는 실정이다. 아파트를 다 지어놓고 공사비 인상분 협상이 안돼 열쇠를 못 받거나 첫 삽도 뜨기 전에 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시공사를 바꾸는 조합도 허다하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산성구역도 그런 사업지다. 서울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1분만 걸으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역세권이다. 사업지 초입부터 가파른 언덕이 있다. 현재 이주와 철거를 완료한 상태로 사업지 전체에 커다란 철제 펜스가 둘러있다. 반대쪽 길 역시 경사가 심하다.

산성구역은 성남 수정구 수정로 342번길 15-10 일대 대지면적 약 15만2797.1㎡(4만6221.1평)에 달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지로 지하 5층~지상 29층 높이의 아파트 3487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이 건립될 예정이다.

이 지역은 1960년대 후반 서울 철거민 이주지로 조성되며 만들어진 성남 구도심의 특성상 노후 빌라 등이 빽빽하게 들어차 주차 공간은커녕 걸어서 다닐 길도 협소한데다 가파른 경사까지 더해지며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오래 전부터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성남 구도심 재개발은 2010년대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산성구역은 재개발 막차를 타고 2012년 '2020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고시'에 따라 2016년 조합 설립과 시공사 선정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2020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후 곧바로 이주를 시작해 올해 4월 멸실신고까지 마쳤지만 공사비에서 발목을 잡히며 사업 지연의 길목에 섰다.
성남 산성구역은 현재 주택을 모두 허문 상태다. 현재 착공을 앞두고 공사비 분쟁으로 첫 삽을 뜨지 못했다./사진=정영희


조합 "공사비 비싸" vs 시공 "어쩔 수 없다"


산성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이하 조합)은 2016년 11월 대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 시공사업단(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당시 조합과 컨소시엄이 합의한 3.3㎡(평)당 공사비는 418만9000원이었다. 이는 2020년 7월 본 계약 체결 시 445만원으로 한 차례 상향 조정됐다.

이주가 진행되는 동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철근과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으로 외국인 노동자 수가 급감해 인건비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시공사 입장에선 공사비 재조정이 불가피했다. 지난 2월 시공사 컨소시엄은 공사비를 3.3㎡당 661만2000원으로 올리는 조정안을 제안했다. 한 번에 32.7%(216만2000원)를 올려달라는 것이다.

조합 측은 즉시 반발했다. 도급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계약서엔 '실착공 이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조정 시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 중 낮은 변동률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성남 산성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사무실 전경./사진=정영희 기자
2020년 7월부터 올 1월까지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5%, 건설공사비지수는 25.9%씩 각각 올랐다. 조합 측은 공사비를 인상한다면 둘 중 낮은 변동률인 소비자물가지수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3.3㎡당 491만8000원이 옳다고 주장했다. 컨소시엄 측은 손해만 보지 않는 선에서 조합과 원만한 합의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3.3㎡당 공사비를 641만원로 조정하겠다고 조합 측에 제시했다.

이에 대해 조합은 수용할 수 없다며 지난 4월 기존에 체결한 공사도급계약서(3.3㎡당 445만원)를 무시하면 계약해지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다음 달 이사회를 열어 컨소시엄 계약 해지를 의결했다.

건설업계에선 시공사 교체라는 초강수를 둔 조합에 놀랍다는 반응이다. 통상 계약 이후 시공사를 바꾸면 착공이 미뤄지는 건 물론 그 사이 발생하는 이자 부담이 상당하다. 공사비가 앞으로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존 조건보다 더 나은 금액을 제안하는 건설업체가 재선정 입찰에 나설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게 건설업계 설명이다.

시공사 교체에 나선 조합은 곧바로 현장설명회를 열었다. 여기엔 기존 컨소시엄과 서희건설, 효성중공업 등 8개사가 참여했으나 실제 입찰엔 모든 업체가 응찰하지 않아 유찰됐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시공사를 바꾼 게 독이 되지만 않으면 좋겠다", "낼 돈 다 내고 착공만 늦어지면 교체를 안 하느니만 못한 셈이다" 등의 말들이 나오며 불안감이 커졌다. 이에 조합은 기존 컨소시엄과 재협상에 돌입했다. 조합 측은 3.3㎡당 공사비를 629만원(지난해 12월 기준 금액)으로 제안받았다고 전했으나 컨소시엄 측은 "정해진 바 없다"며 잘라 말했다.

이번 재협상과 관련 조합 관계자는 "입주나 착공 지연에 대한 조합원들의 우려와 걱정이 너무 컸다"며 "현장설명회에 모습을 보인 중견업체들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데다 기대 이상의 공사비 절감을 추진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관사인 대우건설 관계자는 "당초 계약서에 물가 변동에 관한 조항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공사비 인상률이 현재로선 너무 높아 소비자물가지수 변동 비율만으론 공사 진행이 아예 안 됐던 상황"이라며 "기존 사업장이다 보니 이번 재협상 때 시공사 이익을 아예 포기하는 수준의 금액을 제시했지만 현재 수도권 신규 현장에 3.3㎡당 600만원 초반 공사비로는 진입이 힘들다"고 말했다.
성남 산성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지 건너편으로 정비사업을 마친 인근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사진=정영희 기자


'변동 없음' 초기 계약에도 공사비 올리는 시공사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배제한다는 내용의 특약이 있음에도 많은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이 이뤄지고 있다. 배경엔 지난해 상반기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유권해석이 있다. 당시 국토부는 "건설공사 도급계약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히 불공정하면 그 부분에 한해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조항을 공공·민간 공사현장에 적용,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증액이 없다는 계약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하면 공사비 변경을 거부하거나 건설업체에 그 책임을 떠넘기는 조합의 행위에 따라 종전 공사비 합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법적으론 도급계약서에 따라야 하는 게 맞다. 공사비 증액은 민법상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예컨대 전쟁이 발발해 공사 기간을 도저히 못 맞추는 경우 등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토부 유권해석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지만 법원에서 당해 해석이 공사비 증액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도 곤란하긴 매한가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지난 5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1.16포인트(p)로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철근 가격은 2020년 톤당 60만6000원에서 2022년 113만4000원으로 87.1% 올랐다. 국내 1위 시멘트 업체인 쌍용C&E는 2021년 톤당 7만5000원선이던 시멘트 가격을 지난해 2월과 11월 연달아 올리면서 10만5000원을 기록했다. 이번 인상으로 12만원선을 돌파하면 2년간 50% 이상이 상승하는 셈이다. 레미콘 업계 또한 높아진 시멘트 가격 때문에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지난 4월 ㎥(루베)당 7만1000원에서 8만300원으로 13.0% 인상했다.
성남 산성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지 주변으로 '안전제일'이라 적힌 펜스가 설치돼 있다./사진=정영희 기자
사업 기간이 긴 주택건축공사는 최초 도급계약 체결 당시와 공사 진행 중에 들어가는 비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업계 종사자들은 "지금까지 자재비가 이 정도로 빠른 시간에 확 오른 적이 없었다"며 "매우 이례적 사태"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에 따른 입주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강력한 중재 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제도', 서울시의 '서울주택도시공사의 공사비 검증업무' 등이 존재하지만 이는 사업시행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며 검증 결과 역시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며 "민간 계약을 공공이 강제·감독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강제력 있는 중재 기구 마련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칙은 도급계약서를 준수하는 것이기에 건설자재의 수요나 공급망 문제 등 갑작스러운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계약사항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사비 증액이 시공사의 영업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늘어난 원가에 대한 발주자의 보전행위라는 점을 이해하고 시공사 귀책사유 없이 증액 사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인정한다면 분쟁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시공사와 조합이 서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한 발씩 양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축 동네' 급부상 가능성… 서울 접근성 좋아


사업 지연 리스크는 있지만 산성구역의 사업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깝고 잠실역까지는 차로 10분 거리여서 서울과의 접근성도 매우 좋다는 분석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연구소 소장은 "가구 수도 많고 인근 노후 주거지 대부분이 정비사업 진행 중이어서 준공 시 입지 좋은 신축 동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지역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승인 후 철거가 완료, 입주권 거래만 가능하다. 멸실 이후에는 주택이 아닌 토지를 취득한 것으로 보기에 주택 상태에서 매수하는 것보다 취득세를 아낄 수 있다.

7월19일 기준 완공 시 59㎡(이하 전용면적)에 입주할 수 있는 대지지분 62~64㎡가 7억5000만~9억원 선이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인근에 올 10월 입주를 앞둔 산성 포레스티아(신흥2구역 재건축) 59㎡ 매매 호가와 84㎡에 입주 가능한 산성구역 입주권 호가가 비슷한 수준"이라며 "투자 목적으로 장기전을 바라보는 매수 희망자들의 문의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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