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계약서대로" vs "안 올리면 적자"… 분쟁 끝에 시공사와 결별한 조합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산성구역도 그런 사업지다. 서울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1분만 걸으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역세권이다. 사업지 초입부터 가파른 언덕이 있다. 현재 이주와 철거를 완료한 상태로 사업지 전체에 커다란 철제 펜스가 둘러있다. 반대쪽 길 역시 경사가 심하다.
산성구역은 성남 수정구 수정로 342번길 15-10 일대 대지면적 약 15만2797.1㎡(4만6221.1평)에 달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지로 지하 5층~지상 29층 높이의 아파트 3487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이 건립될 예정이다.
이 지역은 1960년대 후반 서울 철거민 이주지로 조성되며 만들어진 성남 구도심의 특성상 노후 빌라 등이 빽빽하게 들어차 주차 공간은커녕 걸어서 다닐 길도 협소한데다 가파른 경사까지 더해지며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오래 전부터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성남 구도심 재개발은 2010년대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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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가 진행되는 동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철근과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으로 외국인 노동자 수가 급감해 인건비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시공사 입장에선 공사비 재조정이 불가피했다. 지난 2월 시공사 컨소시엄은 공사비를 3.3㎡당 661만2000원으로 올리는 조정안을 제안했다. 한 번에 32.7%(216만2000원)를 올려달라는 것이다.
조합 측은 즉시 반발했다. 도급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계약서엔 '실착공 이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조정 시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 중 낮은 변동률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조합은 수용할 수 없다며 지난 4월 기존에 체결한 공사도급계약서(3.3㎡당 445만원)를 무시하면 계약해지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다음 달 이사회를 열어 컨소시엄 계약 해지를 의결했다.
건설업계에선 시공사 교체라는 초강수를 둔 조합에 놀랍다는 반응이다. 통상 계약 이후 시공사를 바꾸면 착공이 미뤄지는 건 물론 그 사이 발생하는 이자 부담이 상당하다. 공사비가 앞으로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존 조건보다 더 나은 금액을 제안하는 건설업체가 재선정 입찰에 나설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게 건설업계 설명이다.
시공사 교체에 나선 조합은 곧바로 현장설명회를 열었다. 여기엔 기존 컨소시엄과 서희건설, 효성중공업 등 8개사가 참여했으나 실제 입찰엔 모든 업체가 응찰하지 않아 유찰됐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시공사를 바꾼 게 독이 되지만 않으면 좋겠다", "낼 돈 다 내고 착공만 늦어지면 교체를 안 하느니만 못한 셈이다" 등의 말들이 나오며 불안감이 커졌다. 이에 조합은 기존 컨소시엄과 재협상에 돌입했다. 조합 측은 3.3㎡당 공사비를 629만원(지난해 12월 기준 금액)으로 제안받았다고 전했으나 컨소시엄 측은 "정해진 바 없다"며 잘라 말했다.
이번 재협상과 관련 조합 관계자는 "입주나 착공 지연에 대한 조합원들의 우려와 걱정이 너무 컸다"며 "현장설명회에 모습을 보인 중견업체들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데다 기대 이상의 공사비 절감을 추진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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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근거로 하면 공사비 변경을 거부하거나 건설업체에 그 책임을 떠넘기는 조합의 행위에 따라 종전 공사비 합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법적으론 도급계약서에 따라야 하는 게 맞다. 공사비 증액은 민법상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예컨대 전쟁이 발발해 공사 기간을 도저히 못 맞추는 경우 등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토부 유권해석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지만 법원에서 당해 해석이 공사비 증액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에 따른 입주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강력한 중재 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제도', 서울시의 '서울주택도시공사의 공사비 검증업무' 등이 존재하지만 이는 사업시행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며 검증 결과 역시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며 "민간 계약을 공공이 강제·감독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강제력 있는 중재 기구 마련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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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지역은 관리처분계획인가 승인 후 철거가 완료, 입주권 거래만 가능하다. 멸실 이후에는 주택이 아닌 토지를 취득한 것으로 보기에 주택 상태에서 매수하는 것보다 취득세를 아낄 수 있다.
7월19일 기준 완공 시 59㎡(이하 전용면적)에 입주할 수 있는 대지지분 62~64㎡가 7억5000만~9억원 선이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인근에 올 10월 입주를 앞둔 산성 포레스티아(신흥2구역 재건축) 59㎡ 매매 호가와 84㎡에 입주 가능한 산성구역 입주권 호가가 비슷한 수준"이라며 "투자 목적으로 장기전을 바라보는 매수 희망자들의 문의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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