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수단 전락한 사모CB… 금융당국, 대대적 제도개선 나선다(종합)
#기업사냥꾼으로 악명 높았던 일당 3명이 신약개발사 인수, 개발 약품 임상시험 통과 가능성 홍보, 제휴업체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정보 홍보를 통해 상장사 A사 주가를 부양했다. 이들은 A사 사모 전환사채(CB) 전환주식을 고가 매도해 12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편취했다. A사와 신약개발사 간 업무협약은 결렬됐고, A사의 임상시험 투자는 중단됐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점도 확인됐다.
#기업사냥꾼 2명과 상장사 B사의 실질적 사주는 전환기일이 도래한 B사의 사모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고가에 매도하기로 공모했다. 이들은 B사 계열사 자금으로 사모 CB를 취득해 공모자들에게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이전했다. B사는 코로나19 방역 사업, 치료제 개발 등 신사업 진출과 관련한 사업목적을 추가하기 위한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금감원 조사에서 CB를 인수한 주체는 불공정거래 혐의자들로 나타났고, CB 전환주식을 매도해 약 100억원의 부당이득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신사업 진출의 경우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추진 실적이 없었다.
금융감독원이 CB를 악용한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해 혐의자 33명을 검찰에 이첩했다. 이들이 올린 부당이득은 약 840억원으로 주가조작 전력자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25일 '사모 CB 악용 불공정거래 기획조사 진행 경과'를 발표했다. 올해 1월부터 조사·공시·회계·검사 등 자본시장 전 부문이 참여한 '사모 CB 합동대응반'을 꾸려 실시한 기획조사의 중간 결과다. 금감원은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의심되는 40건을 조사대상으로 선정해 14건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금감원은 패스트트랙 등을 거쳐 11건에 대한 형사고발 등 조치를 완료하고, 나머지 3건은 최종 처리 방안을 심의 중이다. 11건의 부당이득 규모는 840억원 상당이다. 불공정거래 혐의자 33명은 검찰에 이첩됐다.
혐의 유형을 보면 부정거래 10건, 시세조종 3건, 미공개정보 이용 3건으로 집계됐다. 백신·치료제 개발, 진단키트·마스크 제작 등 코로나19 관련 또는 바이오 등 허위 신규 사업 진출을 발표하거나 대규모 투자 유치를 가장해 투자자를 기망한 부정거래 혐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규모 투자 유치의 경우 CB 발행 과정에서 담보제공, 사채자금 이용 사실을 은폐하거나 납입 가능성이 없는 사모 CB 발행을 공시하는 등 자금을 성공적으로 조달한 것으로 가장한 혐의가 확인됐다. 불공정거래 세력이 투자조합 또는 투자회사를 통해 사모 CB를 인수하는 사례도 다수 포착됐다. 실제 인수주체를 은폐하고 자금추적을 어렵게 만들어 정상적인 기업 인수 및 투자 유치로 위장하는 방식이다.
사모 CB 불공정거래 사건에는 상습 불공정거래 전력자, 기업사냥꾼이 연루된 경우가 다수 발견됐다. 조사대상 40건 중 62.5%인 25건이 해당된다. 금감원은 "사모 CB가 자본시장 중대 교란사범의 부당이득 편취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대상 기업 39곳 중 29곳에서 상장폐지, 관리종목 지정, 경영악화 등으로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4곳은 상장폐지됐고, 14곳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전년 대비 실적이 30% 이상 감소하는 등 경영상황이 악화한 기업은 11곳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보강된 조사인력을 활용해 사모 CB 기획조사를 빠르게 완료할 방침이다. 사모 CB 합동대응반은 점검 대상 및 결과를 공유하면서 소관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시·회계·검사 등 자본시장 부문 공조 체제를 활용해 불공정거래 카르텔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며 "이와 동시에 금융위원회와 긴밀히 협업해 사모 CB가 건전한 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모 CB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식전환가격을 재조정하는 리픽싱 옵션을 쓸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최초 전환가액의 70%보다 낮출 수 없으나 정관 등 기재 시 예외적으로 최저한도보다 하향 조정이 가능하다. 부당이익 편취에 유리한 구조다.
금융위는 지난 20일 CB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를 주최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CB 발행·유통 투명성 부족 △과도한 CB 발행에 따른 '좀비 CB' 문제 △콜옵션·리픽싱 등 CB에 부여된 다양한 조건이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가능성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김 부위원장은 "CB 발행·유통과 관련된 공시 의무를 강화해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며 "CB의 무분별한 발행·유통을 막아 전환사채가 시장에서 과도하게 누적되며 발생하는 문제를 개선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위, 금감원, 거래소 등 관계기관의 조사역량을 집중해 CB를 악용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철저히 대응해 나가겠다"며 "공정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되 기업의 실질적 수요를 감안해 균형 잡힌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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