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방어선 주역 워커 장군 흉상 28일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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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워커라인)을 구축해 북한군을 막아낸 미국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의 흉상 제막식이 28일 열린다.
25일 경북 칠곡군에 따르면 제막식은 김재욱 칠곡군수, 심청보 칠곡군의장을 비롯해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와 워커 장군 손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8일 오후 2시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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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침공자와 준비되지 못한 자의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남침 6시간 후, 이승만 대통령이 보고 받은 시점인 10시 경에는 T-34 전차부대가 파죽지세로 의정부와 문산을 축선으로 서울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을 빼앗기고 이 대통령은 대전-목포-부산을 거쳐 7월 8일 대구에 임시 경무대를 설치하게 된다. 전황은 급속도로 나빠져 7월1일 미 8군 제 24사단 제 21연대가 주축이 된 스미스 특임부대(Task Force Smith)가 부산에 도착 7월4일 오산 부근 죽미령에서 북한 인민군의 첫 교전을 벌렸으나 큰 희생을 내고 패배하였으며, 이어 34연대가 경전차 부대와 19연대까지 투입된 금강 전투에서도 사정없이 패배하여 12일에는 금강너머로 후퇴해 있었다. 한국군 또한 뚜렷한 미군과의 연계도 없이 지리멸렬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워커장군이 초대 주한 8군사령관 겸 지상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튿날 대한민국 정부는 7월14일 "전쟁이 끝날 때 까지"의 단서조항으로 한국군 군사 작전권을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한다. 전선을 시찰한 워커 사령관은 모든 전략전술을 공세에서 사수, 지연 전략으로 바꾸고 최후의 보루로 낙동강 방어선(Walker Line)을 구축한다. 8월5일 상황은 영덕, 포항, 대구, 진주를 잇는 600리 역기역자 형태의 전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김일성은 8월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그의 역할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정상적 전투를 치를 수 있을 때까지 전장을 사수하고 최소한 지원군이 교두보를 설치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7월29일) 경북 상주에 주둔 중인 미 제 25보병 사단을 방문해 전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로 침울한 군대를 독려한다.
"우리에게는 덩케르크(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철수작전을 한 곳)도, 바탄(미군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철수한 곳)도 없다. 부산으로의 후퇴는 역사에 유례없는 대참극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한 팀으로 싸운다. 물러서는 자는 전우 수천 명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모든 장병들은 우리가 방어선을 지켜낼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Stand or die."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stay)" 그는 임전무퇴, 살신성인의 군인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이렇게 약 45일간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 동안 미군은 T34를 파괴할 수 있는 3.5인치 바주카포와 M4A3셔만 탱크가 한국전에 투입되었고 대구의 8군사령부를 중심으로 항공지원 및 함포지원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되어 9?15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9월18일 서울을 수복하였다."(이상 한미
워커 사령관 그는 누구인가?
당시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그녀의 난중일기라고 일컫는 "Mrs. Rhee's Diary"에서 "워커 장군은 앉은키와 선키가 거의 비슷해 보였으나 벌어진 가슴과 불독같이 생긴 깊이 패인 주름의 강인한 인상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라고 회고 하였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전선을 누비며 상황을 파악하고 소신을 분명히 하는 덕장이요 용장이라고 일컬어 졌는데 6?25 참전용사이자 역사저술가인 페렌바크(T. R. Fehrenbach)는 『한국전쟁』에서 "워커 장군의 용맹하고 솔직하면서도 고집이 센 성품이 낙동강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지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3. 비운의 초대 8군 사령관 워커대장
워커 장군은 과거 유령부대의 사령관답게 쉬지 않고 전선을 누벼 평양 탈환이후 중공군의 3차 공격 시 까지 왕성한 활약으로 전장을 이끌어 갔고 특히 이승만 대통령에게 수시로 전황을 전달하고 긍정적 조언을 함으로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다.
1950년 12월 23일 10시, 워커장군은 미 24사단과 영연방 27여단을 방문하고 아들인 샘 S.워크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96-5자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가 타고 있던 지휘관 지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보병 6사단 2연대 소속 한국군 스리쿼터 차량과 충돌하여 전복, 야전병원으로 긴급후송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다. 워커 장군의 유해는 미군 역사상 최초로 곧바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이때 맥아더 장군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귀국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이때 샘 심즈 워커 대위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부대원들을 두고 혼자 만 떠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였으나 맥아더 장군의 명령으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1월 2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사후 워커 장군은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워커라인)을 구축해 북한군을 막아낸 미국 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장군의 흉상 제막식이 28일 열린다.
25일 경북 칠곡군에 따르면 제막식은 김재욱 칠곡군수, 심청보 칠곡군의장을 비롯해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와 워커 장군 손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8일 오후 2시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열린다.
워커 장군 흉상은 국민 5000명의 성금으로 제작됐다. 제막식도 주민 성금으로 열린다.
이날 제막식에 앞서 워커 장군과 백선엽 장군의 모습과 명언이 담긴 가로·세로 5m 크기의 대형 방패연 날리기 행사도 마련돼 눈길을 끈다.
워커 장군은 6·25 당시 전 국토의 90%가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절체절명 위기에서 '워커 라인'을 구축해 북한군을 막아내고 인천상륙 작전을 가능하게 했다.
한미우호협회에 따르면 1889년 12월 3일 텍사스주의 벨턴(Belton)에서 출생한 워커 장군은 1905년 버지니아 군사학교에 입학, 브랜든 육사준비학교를 마친 후 1908년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12년 소위로 임관했다. 제 1차 세계대전시 제 5 보병사단 기관총대대의 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계기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조지 패튼이 지휘하던 제3야전군 산하의 20군단장으로 참전하였는데 빠른 기동성과 활약으로 그의 부대는 "유령 군단" 으로 불릴 정도였다. 아프리카에서 롬멜 장군의 전차부대를 격파한 뒤 중장으로 승진한 월튼 워커장군은 1948년 9월 주일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해 전세가 어려워지자 곧바로 대구에 미 8군 사령부가 설치되면서 7월 13일, 초대 주한 미 8군사령관 겸 지상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stay)"라는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냈다.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미 24사단과 영연방 27여단을 방문하고 역시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 샘 S.워크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숨지게 된다. 워커힐 호텔이 있는 서울 광진구 워커힐(Walkerhill)의 명칭은 워커 장군을 기린 것이다.
워커 장군 흉상은 워커 장군을 또래 친구들에게 알려달라는 김동준(장곡중) 군과 친구들이 김재욱 군수에게 보낸 민원에서부터 비롯됐다. 학생들의 민원을 접한 김재욱 칠곡군수와 칠곡군 한미친선위원회(회장 이삼환)는 흉상 건립으로 화답하며, 지난달 21일부터 '천원의 힘을 믿습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워커 장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천원 지폐는 물론 고사리손이 내민 100원 동전도 모이기 시작했다.
흉상은 어린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해 받침대와 기단을 포함 153cm 높이로 제작되며, 2종 공립박물관이자 국가보훈부 현충 시설로 지정된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자리 잡는다.
김재욱 군수는 "제막식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이 주도하는 남다른 행사로 열릴 계획"이라며 "워커 장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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