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IT] 기술탈취 판례 (2) 한화의 태양광 스크린 프린터 기술탈취

2023. 7. 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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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한화의 태양광 스크린 프린터 기술자료 탈취 판례’로 본 기술 유용 분쟁의 시간 및 비용 부담 문제(서울고등법원 2021. 12. 23. 선고 2020나2032402 판결 등)

“7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소송하고 있습니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니네요.”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해 적발된 사례가 매년 20건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6월 말, 국회 정무위원회 김희곤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지난 7년간 중소기업 기술 유용 적발 및 처분 현황)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7년부터 2023년 5월경까지 총 126건의 기술 탈취 행위를 적발했으며, 그중 24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9월경, 윤관석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지난 5년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유용행위 적발 현황 자료)에서 2017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기술 유출행위 사건을 14건으로 집계했던 것과 비교하면, 적발 건수에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집계 기준이 달랐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난해 공정위에 기술 유용 감시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인력을 보강하는 등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를 위해 기울인 정책적 노력이 최근 기술 유용 적발 실적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위에서 지난해 6월 발간한 ‘2022 중소기업 기술 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기술 침해를 경험한 후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대응을 하거나(36.8%),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를 했다(21. 1%)고 응답한 비율은 총 57.9%입니다. 2021년 실태조사 보고 당시, 총 37.1 %(각각 31.4%, 5.7%)로 응답했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고,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도 42.9%에서 15.8%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1년 사이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법적조치를 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는 조사였습니다.

다만, 법적조치를 취함에 있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부담은 여전히 중소기업이 넘어야 할 큰 장애물입니다. 기술 보호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 기술 유용행위를 적시에 파악해 입증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만만치 않으며, 이를 공정위나 법원에 제출해 법적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간 이어지는 법적 공방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화의 협력업체인 에스제이이노테크가 한화의 태양광 스크린 프린터 기술자료 유용을 2016년 7월경 공정위에 신고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지녀야 할 부담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사건의 경우, 공정위에서 사건 조사를 진행해 의결에 이르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며(공정위 의결일 2019년 10월 24일), 한화 측에서 공정위의 처분 (시정명령 및 3억 8200만원의 과징금 납부 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결과 2021년 5월 7일, 대법원판결로써 공정위의 처분이 확정 취소됐습니다(대법원 2020두57332). 공정위의 처분이 하도급법에서 정한 처분시효(신고일로부터 3년)를 도과해 이뤄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한편, 에스제이이노테크는 공정위 신고와 별개로 2018년 6월경 한화 및 한화큐셀코리아 등을 산업기술 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및 형사고소를 진행했습니다. 1심 법원은 2020년 5월경 에스제이이노테크가 한화 측에 제공한 자료가 하도급법상의 기술자료 내지 부정경쟁방지상의 영업비밀 또는 성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에스제이이노테크의 손해배상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8가합535523). 뒤이어 2020년 8월경 검찰에서도 위 1심 판결과 같은 취지로 한화 측의 법 위반 사실을 부정하고 불기소처분(혐의없음)을 내렸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 1공장 / 출처=에스제이이노테크 홈페이지

에스제이이노테크는 민사 1심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했고,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도 항고, 재정신청 및 재항고를 통해 불복했으나, 2022년 3월경 대법원은 재항고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려 무혐의 종결됐습니다(대법원 2021모1143).

그런데, 지난 2021년 12월경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한화 측이 에스제이이노테크에 10억원 및 그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0나2032402).
서울고등법원은 에스제이이노테크 측이 제공한 자료 중 일부는 하도급법상 기술자료에 해당함을 전제로 한화 측의 기술 유용행위를 인정하고, 에스제이이노테크가 입은 손해추정액인 5억원의 2배인 10억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산정했습니다.

아직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하도급법에 기술 유용행위에 대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조항을 도입한 지 10여 년 만에 나온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당초 에스제이이노테크는 손해배상액으로 100억원을 청구하였던 만큼, 일부 승소 판결에도 그간 들인 시간과 노력, 비용 대비 손해산정액이 적다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6월경, 중소기업 기술 보호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해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현행 3배에서 5배로 강화하는 등 기술 분쟁에 있어 중소기업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기술 분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상쇄할 만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제도가 양측에 공정하면서도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경찰청과 더치트 간의 아이디어 및 사업권 침해 논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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