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을 올리는 두 가지 방법 [긱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1920년대 파리의 한 살롱에는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던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가 모여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은 그 곁에 중요한 사람이 있었고, 스타트업 역시 좋은 팀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넷플연가를 운영하는 세븐픽쳐스의 전희재 대표의 생각입니다. 전 대표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김환기와 김향안, 이센스와 빈지노 역시 서로 치열하게 대화하고 작업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작은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한경 긱스(Geeks)에 보내왔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가는 여정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살롱에서 아직 빛 보지 못한 예술가들이 만나 치열하게 대화하며 좋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일과 닮았다. 지나고 나서 우린 이 시절을 황금시대(벨 에포크,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좋은 사람들이 팀이 된다는 건 우연이라 더 아름다운 일이고, 스타트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나름의 절박함을 가지고 그 우연을 더 이상 우연이 아니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매일 고민하며 달려가고 있다.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만나지 않았다면?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어린 시절 서로 관심이 없었거나 음악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서로의 뮤즈가 되어 주었던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가 파리로 떠나 나눈 대화가 없었더라면? 2023년 즈음 래퍼 이센스는 빈지노라는 음악 친구가 없었다면 더 좋은 앨범을 낼 수 있었을까?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이 그 곁에 있던 중요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상상에 대한 내 결론은 항상 똑같다. '분명 혼자선 위대한 일을 해낼 순 없었을 거야'. 나는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의 볼품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생담보다는 그 시절 누군가와 만나서 나눴던,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대화가 결국 이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들이 나눴던 치열한 대화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우연이, 결국 같이 성장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 그들의 '화학 작용'이 참 멋스럽다고 생각한다.
꽤 좋은 작업들을 해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아니나 다를까 혼자였던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좋은 작업과 결과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의 뜨거운 대화와 화학 작용 속에서 스스로도 모른 채 지금도 피어나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 속 1920년대 파리의 한 살롱에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던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가 다 모여 있었던 장면이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는 서로를 어떻게든 알아보니까.
내가 살면서 믿게 된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성장하는 시절에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했는지’에 따라 삶의 궤적이 선명히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미 무언가 갖춰진 뒤의 인맥이나 네트워크가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의 한 시절을 누구와 보냈는지, 진심으로 교류하고 충돌하며 끈적하게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누구였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장과 내 선택은 운명처럼 뒤바뀐다. 물론 그 당시에 결과를 미리 눈치채는 사람은 없다. 지나고 나면 우린 그 시절을 황금시대(벨 에포크)라고 부를 뿐.
그래서인지 나는 삶의 최우선 가치를 어느 시절에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둔다. 누군가가 우연히 한 명을 만나서 벌어지는 일만큼 우리 삶을 영화처럼 만들어주는 게 또 있을까. 건조하고 외로운 삶에 서사를 입혀주는 건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뜬금없지만 나는 이런 이유로 스타트업이 내게 꽤 맞는, 낭만적인 일이라고 여긴다. 스타트업은 이미 자리 잡힌 구조에서 '나이스'하게 커리어를 쌓는 과정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시절의 비틀즈 멤버들이 토닥이며 종일 골방에서 이 곡이 좋은지, 저 곡이 좋은지 토론하는 과정에 가깝다. 내 재능의 수준도 모른 채, 어떤 곡이 나올지도 모르면서 몰입하고 치열한 그 순간은 그저 결과만을 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함께할 친구를 만나는 일, 시장에 통하는 제품을 발견하고 뚝딱뚝딱 보수해 가며 성장하는 과정은 그런 일과 닮았다. 오늘도 누굴 만나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오늘 회의에서 어떤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과정과 결과물이 천차만별이 되니까. 운이 좋다면 오늘 한 대화가 100년 뒤에도 들릴 앨범의 가사가 되는 것처럼 꽤 멋진 결과물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내 역량이 부족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으니 자기 객관화 역시 필수다.
많은 스타트업 바이블에서의 답은 하나라고 말한다. 사람, 즉 팀이 전부라는 것.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관찰과 제작을 반복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정말이지 우연으로 만난 사람이 전부다. 그렇지만 그 우연이 꽤 멋진 우연이 된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그 속에서 나는 과연 존 레논일까? 폴 매카트니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위대한 사람은 아니어도 좋으니 뜻이 맞는 이들과 이 시절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우연을 우연이 아니게 만드는 법, 두 가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인연 혹은 우연이라 불린다. 나는 적어도 일에서만큼은 앞서 말한 이유로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크기 때문에 스타트업 팀을 만드는 과정을 그저 우연으로 두고 싶진 않다. 우연은 정말 우연일까? 우리는 더 좋은 우연을 만들 순 없을까? 더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 욕망, 기어코 좋은 곡을 써내고 싶다는 마음은 흔히들 ‘운’이라고 부르는 영역조차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MLB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처럼 만다라트표를 만들어 스스로 운을 만들어내는 성실함엔 한참 부족하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믿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정답은 단순하고 참 어렵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귀신처럼 알아본다. '내 주변에 있는 다섯 명이 나'라는 말처럼 와닿는 말이 있을까 싶다. 내가 그렇듯 다른 사람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매력적인 가치를 좇고, 한 시절을 힘껏 투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스타트업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차근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회사 역시 변명 없이 한 계단씩 성장해 좋은, 잘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지금 있는 동료보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더 나은 사람을 동료로 데려오는 일이다. 그래서 팀원들이 서로의 등 뒤를 기꺼이 맡길 수 있고 신나는 경쟁을 할 수 있다. 이건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한 강연에서 듣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기준인데 지금은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 당근마켓의 창업자 중 한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그들은 초기 멤버를 찾을 때 ‘기존 멤버보다 최소한 한 가지라도 더 나은 부분이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항상 지금 있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들로 팀을 채워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 사람이 급해도,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어도, 내부 인원들을 설득해가며 이 기준을 낮추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성장함에 따라 동료들에게 가장 좋은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들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일. 기준을 높이고 지금 있는 동료보다 더 나은 사람을 데려오는 일. 이 두 가지를 반복하는 일은 말이 쉽지, 지독하게 어렵고 지난한 ‘수련’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확실히 '더 좋은 우연을 만나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의 반복으로 우린 우연을 더 이상 우연이 아니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난 팀원들과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김환기와 김향안처럼, 이센스와 빈지노처럼 서로 치열하게 대화하고 더 나은 생각과 작업을 해나간다. 실패할 수도 있고 위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함께 이 시절을 겪어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나고 나면 우린 이 시절을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스타트업이 성장해 대다수 사람들이 쓰는 서비스가 되고 유니콘이 된 다음에 이 제품을 만들었던 초기 멤버들은 다음 여정을 향해 떠나간다. 이들은 그간의 고생과 경험을 밑거름 삼아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들은 ‘스타트업 마피아'라고 불린다. 지금도 꽤 많은 창업자들이 '페이팔 마피아', ‘토스 마피아', ‘카카오 마피아'로 불리고 있고 이들은 그다음 프로젝트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며 그 시절의 노력들이 자신의 실력이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이렇게 되면 너무 좋겠지만 세상엔 알려지지 않고 잘되지 않은 팀이 훨씬 더 많을 거다.
종종 ‘결과적으로 잘 된 팀에 속했던 멤버와 그렇지 못한 팀의 멤버의 그다음 행보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경쟁 관계에 있었던 두 스타트업에 속했던 멤버들의 그다음 여정들에 대한 기사였는데, 두 회사에 속한 개인의 실력은 비슷했어도 결과적으로 잘 된 팀에 속했던 사람은 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었고 급여 수준도 크게 상승했지만, 그렇지 못한 팀원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그 전보다 나은 커리어를 만드는 경우가 비교적 적었다는 내용이었다(그래도 개인이 잘하면 이와 무관하게 좋은 기회가 많았다). 성공적이었던 커리어도 한몫하겠지만 뿌리 깊은 성공에 대한 기억이 결국 심리적, 상황적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항상 몸이 굳고 어깨가 무거워진다. 같이 하자고 설득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책임감으로 조금 더 절박하자고 말할 때가 많다.
다 같이 절박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본 조건 정도가 된다는 건 또 다른 함정이다. 절박하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핀잔도 많이 듣고, 확신할 수 없는 결과에 겁도 나지만 이 길의 끝에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좋은 동력이 된다.
삶은 운이 90%, 노력이나 실력이 10%라는 말을 믿는다. 이 일은 노력해도 잘 안될 수도 있다. 아니, 잘 안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면 우린 노력할 필요가 없을까? 나는 우리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10%를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나머지 90%의 운마저 따르는 경험을 많이 목격했던 것 같다. 믿음이 부족해질 때면 나는 어릴 적 만다라트표를, 그리고 운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오타니 쇼헤이의 경기를 보곤 한다. 이 방향만이 운을 더 이상 운으로 두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실패해도 괜찮다. 그렇지만 최선은 다해야 한다. 20·30대 소중한 한 시절을 기꺼이 내어준 서로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 속 파리의 언덕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그들 각자가 결국 인정받는 좋은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애비로드의 합주실에서 음악으로 싸우던 두 청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건 그들의 그 행보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지금을 돌아가고 싶은 시절(벨 에포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벌써부터 이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좋은 팀원들과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절이 그리울 거라고 확신하는 나날들에 감사하며 오늘도 우연을 더 이상 우연이 아니게끔 만들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일들을 하려고 한다.
전희재 | 세븐픽쳐스(넷플연가, 문학자판기 구일도시) 대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PD
△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
△ 아산나눔재단 스타트업팀 매니저(인턴)
△ 수영 선수(8년, 전국소년체전 입상)
△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 대구외국어고 영어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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