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마운드의 숨은 ‘살림꾼’…이태양이 보여준 베테랑의 ‘품격’
“(이)태양이를 준비해야 하나 했죠.”
한화가 1005일 만에 5연승에 도전했던 지난 6월27일 대전 KT전. 2회초 에이스 선발 펠릭스 페냐의 오른쪽 엄지손가락 손톱 부위에 피가 나는 변수가 생겼다. 응급 처치 이후 출혈은 멎었고, 페냐는 7이닝 1실점 호투로 한화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튿날 만난 최원호 한화 감독은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놀란 마음을 전하며 베테랑 우완 이태양(33)의 이름을 언급했다. 최 감독은 페냐가 투구를 계속하지 못할 경우, 불펜에서 대기 중인 이태양을 마운드에 올릴 계획이었다.
이태양은 최 감독의 입에서 자주 거론되는 불펜 자원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쓰임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그는 올 시즌 특정 보직에 국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기용되고 있다. 변수가 달갑지 않은 감독으로서 어떤 상황에 등판하든 제 몫을 해주는 이태양의 활약은 더욱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태양은 올 시즌 두 차례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 5월20일 잠실 LG전에 부상한 김민우 대신 선발로 등판해 3.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앞서 4월23일 대전 LG전에서도 휴식을 부여받은 문동주의 대체 선발로 나가 2.2이닝을 실점 없이 지켰다. 이태양이 선발로 나선 2경기에서 한화는 강팀 LG를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대체 선발, 롱맨, 필승조, 추격조 등 보직을 가리지 않고 투입되고 있는 이태양은 올 시즌 한화 불펜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25일 현재 32경기에 등판한 그는 44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키며 1승 2홀드 평균자책 2.25로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태양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스탯티즈 기준)은 1.49로 페냐(3.03), 문동주(1.95)에 이어 한화 투수들 가운데 3번째로 높다.
2010 KBO리그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36순위)로 한화에 입단했던 이태양은 줄곧 한화에서 뛰다가 지난 2020시즌 도중 SK(현 SSG)에 트레이드됐다. 지난해 그는 SSG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30경기에 등판해 8승(3패) 1홀드 평균자책 3.62로 활약하며 SSG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보탬이 됐다. 한화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로 총액 25억원(4년)에 이태양을 재영입했다.
한화는 올 시즌 FA 영입 효과를 누리고 있는 구단 중 하나다. LG에서 온 채은성은 이적 첫해부터 중심 타자로 자리 잡았고, 삼성에서 복귀한 오선진은 시즌 초반 팀이 어려울 때 공격과 수비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줬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온 이태양 역시 ‘FA 모범생’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전천후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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