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비 후폭풍 이스라엘 대혼돈…前총리 "내전으로 간다"(종합)

김상훈 2023. 7. 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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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무력화 입법 강행…시위대 "독재로 가는 길"
네타냐후 "야당이 모든 제안 거절, 11월까지 협상 계속"
경찰, 도로 점거한 시위대 물대포·기마대 동원 진압…34명 체포
'사법부 무력화' 법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로·서울=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이도연 기자 =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가 이른바 '사법 정비' 입법을 끝내 강행하면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이스라엘이 대혼란에 휩싸였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과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가 전날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 권한 축소 법안 처리를 강행한 후 수만명의 시위대가 의회와 대법원, 수도 텔아비브를 지나는 아얄론 고속도로에서 국기를 흔들며 항의 시위를 펼쳤다.

거리의 벽과 울타리에는 "우리는 독재자를 섬기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반란이다", "네타냐후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었다.

이스라엘 경찰은 고속도로를 점거한 시위대에 물대포를 쏴 강제해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기마대까지 동원했다. 경찰은 섬광 수류탄 사용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진압에 해산된 아얄론 고속도로 위 시위대는 이후에도 하샬롬 다리, 카플란 거리 등 텔아비브 곳곳에서 "부끄럽다"는 구호를 외치고 부부젤라와 사이렌 등을 울리며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자 중 한 명인 대니 키멀(55)은 "이것은 독재로 가는 길"이라며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은 그들(시위대)의 권리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공기를 들고 반정부 시위에 동참한 이스라엘 남성.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자신을 딘이라고 소개한 20대 남성은 북한 인공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나의 미래가 걱정이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의 미래도 걱정"이라며 "이 정부가 나의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모든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표를 준 사람들을 위해서만 움직인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네타냐후 총리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에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라는 문구를 더한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행진에 나서기도 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이날 시위대를 6시간 만에 해산시켰으며, 경찰을 공격하거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텔아비브에서 18명 등 총 34명을 체포됐다고 밝혔다. 또 경찰관 10명이 충돌 과정에서 다쳤다고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은 또 이스라엘 중부에서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돌진해 3명을 다치게 한 운전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법안 통과 전부터 의사당과 인근 거주 여당 의원 자택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며 법안 처리 저지를 시도했다.

시위대에 물대포 쏘는 이스라엘 경찰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이 이스라엘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는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되는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이스라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뒤집을 수 없게 됐다.

사법부가 정부의 독주를 최종적으로 견제할 수단이 사라지는 것으로 야당뿐 아니라 미국 등 서방도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야권은 최종 표결을 보이콧했고, 여권 의원 64명의 찬성으로 법안 처리는 종결됐다.

야당 의원들은 회의장을 떠나기 전에 "수치스럽다", "파괴의 정부"라고 외쳤다.

야권을 대표하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슬픈 날"이라며 "연정의 승리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비판했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온 '양질의 정부를 위한 운동'은 개정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를 대법원에 청구했다.

회원 수 80만명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 노동자총연맹)도 사법 정비 중재 실패의 원인을 여야 정치인들의 정치적 변덕으로 돌리면서 총파업을 예고했다.

여기에 더해 수천 명의 예비군이 독재로 향하는 정부하에서 복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스라엘 군의 준비 태세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연설을 통해 예비군에 계속 근무하라며 "군 복무를 정치적 논쟁과 분리하라"고 촉구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법안이 통과된 후 영국의 채널4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내전에 들어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이것은 심각한 위험이고 전례가 없다"며 "우리는 지금 국가의 안정과 정부의 수행 능력, 다수 인구의 복종, 정부가 다수 인구에 의해 불법으로 인식된다는 점 등의 측면에서 시민 불복종, 즉 내전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스라엘 정부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우리가 받아들이거나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 일가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벌이고 있을 만큼 네타냐후와 앙숙인 관계다.

이스라엘 민주주의연구소의 요하난 플레스너 소장은 이번 법안 통과가 이스라엘 정부 시스템의 오래 지속된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즉각적인 결과는 사회 내부 분열을 확대하고 안보를 약화할 것"이라며 "불확실성의 증가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는 11월까지 야당과 사법 정비 관련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저녁 영상을 통해 야당과 법안에 대해 타협에 이르려고 했으나 야당이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계속 논쟁하고 싸울 수 있지만 이야기하고 합의할 수도 있다"며 "우리 안의 평화로 손을 내밀자"라고 덧붙였다.

스테퍼니 핼릿 주이스라엘 미국 대리대사는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을 만나 "이스라엘 지도자간 정치적 대화를 통한 합의 시도를 계속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쉬타예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총리는 "이스라엘은 지금 극단주의 정부의 팔레스타인 대상 범죄를 묵인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정부를 압박해 우리 영토에 대한 점령과 우리 주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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