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100조 더 저축한 가계…“안쓰고, 안갚고”

이유리 2023. 7. 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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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평가 보고서
“방역 등으로 소비 졔약되고, 소득 늘었기 때문”
초과저축, 소비 재원에 활용 안하고 대출 상환도 안해
저축액은 주로 예금·주식 등 유동성 좋은 자산에
한국은행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우리나라 가계가 이전보다 100조원 넘는 금액을 더 저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가 제약됐지만 소득은 늘어난 영향이다. 

다만 초과저축을 부채상환에 적극 활용하지는 않았다.

한국은행이 24일 내놓은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2020~2022년) 가계부문 초과저축 규모는 101조~129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7~6%, 민간소비의 9.7~12.4% 수준이다.

◆안쓰고 더 벌어 100조원 초과저축=보고서는 초과저축을 팬데믹 이전 추세를 웃도는 가계 저축액으로 정의했다. 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이 5월 제시한 방법론을 사용해 추정한 것이다. 저축은 가계의 소득에서 소비를 뺀 것으로 봤다.

한은 추산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계의 저축 규모가 통상적인 수준보다 100조원 이상 더 쌓였다는 의미다.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에는 가계 저축률 평균이 7.1%였는데 팬데믹 이후 평균은 10.7%로 크게 높아졌다.

초과저축 증가 원인으로 한은은 팬데믹 직후의 소비 감소와 지난해 소득 증가 등을 꼽았다. 조주현 한은 조사국 동향분석팀 과장은 “지난해 이후 큰 폭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주요국에서 소비가 양호한 가운데 주택가격 조정폭도 과거 위기 때와 비교해 크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초과저축에 따른 양호한 가계 재무상황이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초과저축은 지속적으로 쌓이는 추세다. 미국은 초과저축 일부가 소비재원으로 활용되면서 초과저축 규모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과저축 규모가 계속 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한국은행

소득계층별로 보면 초과저축은 고소득층에서 가장 크게 늘었다. 보고서는 “견고한 노동시장,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등으로 임시직에 비해 상용직의 정액급여가 높은 오름세를 보였고, 팬데믹 기간 호황을 누린 금융·IT(정보통신)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급여가 늘어난 점도 고소득층의 초과저축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저소득층의 초과저축 누증 역시 함께 나타났다.

시기별로는 팬데믹 초기에 소비가 감소한 것이 저축 증가에 영향을 줬다. 대면 서비스를 중심으로 소비가 줄면서 초과저축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임금 상승,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등 소득 증가도 저축 확대에 영향을 줬다.

저축률 상승분을 저축 동기에 따라 분해한 결과에서도 절반 이상을 코로나19에 따른 소비 제약 등 ‘비자발적 요인’이 차지했다.

한국은행

◆“부채상환, 소비로 활용 안해”=하지만 풍부하게 쌓인 저축액이 부채 상환이나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보통 가계는 축적된 저축을 소비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부채 상환, 자산 취득 등에 쓴다. 하지만 한은은 팬데믹 기간 우리나라 가계가 초과저축을 부채상환에 적극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진단했다. 그렇다고 소비에도 크게 활용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까지 이어진 고용 호조와 정부 지원 등으로 소득 여건이 양호했던 것이 영향을 줬다. 실제로 2020~2022년 명목 가계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4.6% 늘었는데, 증가율이 팬데믹 이전 2017~2019년(3.6%)보다 높았다.

조 과장은 “금리 상승으로 부채 상환 유인이 커졌지만 우리나라 가계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주요국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이라며 “2020~2022년 가계의 금융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크게 늘었는데 이는 우리 가계가 초과저축을 부채 상환에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가계는 주로 예금·주식 등 유동성이 좋은 금융자산 형태로 저축액을 쌓은 것으로 추정됐다. 한은 국민계정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은 2020~2022년 현금·예금·주식·펀드를 중심으로 1006조원 늘었다. 591조원이었던 2017~2019년에 비하면 두배에 달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을 실물경제와 금융의 큰 불확실성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 조 과장은 “유동성 좋은 금융자산 형태의 초과저축은 앞으로 실물경제 측면에서 부정적 소득 충격이 있을 때 완충 역할을 하면서 민간 소비의 하방 위험을 줄여줄 것”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언급했다. 

반면 금융불안의 잠재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조 과장은 “최근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가계 초과저축이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에 재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주택가격 상승, 가계 디레버리징 지연 등으로 금융안정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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