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놀았겠나?” 이상민 운명의 날…탄핵심판 받은 이유

엄지원 2023. 7. 2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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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25일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내립니다. 국회가 지난 2월8일 이 장관 탄핵 소추안을 가결한 지 5개월여 만입니다.

헌재에서 탄핵 소추안이 기각될 수 있다는 사법적 전망에도 야당이 헌정사상 초유의 장관 탄핵 소추를 감행한 이유는 63쪽 분량의 ‘행정안전부장관(이상민) 탄핵 소추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탄핵 소추안을 통해 이태원 참사 당시 이 장관의 대처를 되짚어 봤습니다.

수행비서 기다렸다 재난 발생 2시간30분 만에 현장 도착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행안부 중앙재난 안전상황실은 밤 10시43분께 처음 재난 발생 상황을 접수했지만 재난 대응 주무 장관인 이 장관은 1시간5분이 지난 11시20분에야 참사를 인지했습니다. 밤 11시1분께 상황을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늦게 인지한 겁니다.

그 뒤에도 이 장관이 “늑장 대응을 하며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 총괄자로서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게 국회의 판단입니다. 밤 11시49분께 재난안전비서관에게 ‘현장 상황파악 및 현장 방문 준비’를 지시한 것이 전부입니다.

당시 이 장관은 서울 압구정동의 자택에서 일산에 거주 중인 수행비서의 관용차량을 기다렸습니다. 최초 보고를 받고 밤 12시45분 이태원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85분 동안 이 장관은 재난안전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을 파악하고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받은 것 말고는 재난 수습을 위해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치료와 응급의료체계 가동을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응급의료 관련 기관에 연락할 수 있었지만 어떤 조정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정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현장 도착 뒤에도 그는 중앙대책본부 구성 등 실질적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밤 12시42분에 열린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중앙대책본부는 새벽 2시30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꾸려졌습니다.

그 시각, 현장에 출동해 구급활동에 나선 소방관들은 국정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너무나 외로웠다. 소방관들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없었고, 구조한 사람들을 놓을 장소조차 마련되지 않을 정도로 인파들이 통제되지 않았다.”

주검이 방치된 새벽 1시30분, 현장을 떠났다

참사 당일 밤 12시45분 현장에 도착한 이 장관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새벽 1시30분께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날 때 현장에는 심정지 상태이거나 이미 숨진 수십여명의 희생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지도 못하고 임시영안소도 마련되지 않아 길거리나 인근 건물에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을 어디로 어떻게 이송할 것인지, 임시영안소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조정해야 했지만 사고 수습의 총괄조정 책임을 맡은 행안부 장관이 구체적 지시·조정 없이 현장을 이탈한 것입니다.

이 장관 스스로도 국정조사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부실 대처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서울시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 용산구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에게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구체적 지휘를 했어야 하는데 안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안 했다”고 답변했고, “참사 초기 행안부 중대본을 즉시 가동하지 않았고, 비상대책기구를 가동해 대응해야 하는데 안했다”는 지적에도 “지금 와서 보면 저의 행동이나 대응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놀고 있었겠나?” 무책임한 발언

국회는 이 장관이 참사 발생 직후부터, 국정조사 등의 과정 전반을 거치는 동안 ①참사 원인에 대한 섣부른 언행 ②참사에 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언행 ③행정안전부 장관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와 인식 부족을 보여주는 언행을 무수히 반복했다고 봤습니다.

참사 발생 이튿날인 10월30일 브리핑에서 그는 ‘당일에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이 됐었는데 이번 주말에 현장에 소방이나 경찰이 배치됐는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주무 장관의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2월27일 열린 국정조사에서 이 장관은 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최초 인지 시점부터 85분 동안 중대본을 설치하지 않고 뭘 했느냐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그는 답했습니다. “이미 골든 타임을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습니까, 위원님?”

중대본 설치에 대해선 이런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같이 이례적으로 발생한 사고 수습과 관련해 중대본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 중대본이 구성됐다고 한다면 현장에 있어야 할 사람 들이 중대본에 참여해 긴급구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열거한 내용들 외에도 이 장관의 참사 대응 실패를 증명하는 자료들은 많습니다. 초유의 국무위원 탄핵 소추인 만큼 헌재는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보입니다. 헌재의 ‘사법적 판단’을 떠나,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는 탄핵 소추안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정안전부장관으로서 적절한 직무수행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위기 상황에서 피소추자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의 총괄·조정’이라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역할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국가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이번 10·29 이태원 참사와 같이 대규모 재난이 발생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한 관계기관의 행정력을 결집하고 이를 총괄·조정하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의 대응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혼선 등으로 사고수습이 원활하지 않고 피해가 확대되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경우다.”

“피소추자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사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 159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고, 196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받지 못한 결과의 심각성은 피소추자에 대한 파면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사정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임에도, 그 의무를 이행할 핵심 고위공직자가 그 의무를 방기하여 심대한 침해 발생에 기여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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