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어디 가냐고요? 떡볶이 먹으러요! [브랜더쿠]
‘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
많은 한국인이 인생 음식으로 떡볶이를 꼽는다. 떡볶이와 관련한 추억,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혹은 나만 아는 레시피나 맛집을 저마다 품고 있다. ‘떡볶이 덕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많다.
떡볶이 왕좌의 자리
BRDQ. 이제까지 가본 떡볶이집이 몇 개쯤 될 것 같나. 떡볶이를 얼마나 자주 먹는지?
떡지순례. 대략 400곳이 넘는다. 많이 먹을 때는 하루에 세 번 매일 먹던 나날도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로 먹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꼬박꼬박 먹고 있다.
‘2020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를 회상해보자면?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떡볶이 사진만 보고 어떤 식당인지 맞추거나 ‘다음 중 시장 안에 있는 곳이 아닌 것은?’ 식의 문제들이었다. 대부분의 문제가 가본 떡볶이집 중에 나와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광역시 중 떡볶이 가장 적은 도시는?’였는데, 도통 알 수 없어 결국 찍었다. 총 98점이었고 동점자도 있었지만 동점자보다 10분 정도 빨리 문제를 푼 덕에 우승을 차지했다.
틀린 한 문제가 어떤 문제였는지 궁금하다. 우승을 하고 나니 달라진 점이 있었는지?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자주 먹지 않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관련 문제를 틀렸다. 심지어 답을 알고 있었는데 잘못 누른 것이었다. (웃음) 우승을 하고 나니 운영하고 있는 떡볶이 모임이나 나에 대한 신뢰도가 확실히 높아진 것 같다. 사실 참여할 때만 해도 우승이 목표는 아니었다.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참여한 것인데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다.
떡볶이, 어디까지 먹어봤니?
어쩌다 떡볶이에 빠지게 되었는가.
누나가 3명이다. 어릴 때부터 떡볶이를 정말 많이 먹었다. 누나들 중 한 명이 한 번씩만 사와도 일주일에 여러 번 먹게 되더라. 내 돈 주고 사 먹게 된 건 군대 다녀온 후였다. 동네 떡볶이를 별생각 없이 사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한동안 거의 매일 그 떡볶이를 먹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사장님이 바뀌어서 맛이 아예 달라져버렸다.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혹은 가장 즐겨 먹는 조합은 무엇인가.
하나를 꼽기 어려운 것 같다. 다만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자주 먹지 않는다. 싫어하는 건 아니고 신메뉴가 나오면 먹어보거나 ‘로제’같은 퓨전 메뉴가 먹고 싶다면 먹는 정도랄까. 이것저것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같이 먹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튀김을 좋아한다. 튀김은 가게마다 종류가 달라, 그 집에서만 파는 튀김이 있다면 꼭 시켜서 먹어본다. 무엇보다 기름진 튀김이 매콤한 떡볶이 국물에 적셔져 눅진하게 되는 게 너무 맛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 밀떡파인가, 쌀떡파인가.
떡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기에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율이 궁금해서 투표를 해봤다. 운영 중인 오픈카톡방에서 117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밀떡이 86명이었다. 일반적으로 70% 이상의 사람들이 밀떡을 더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굳이 골라야 한다면 밀떡을 고르겠다. 하지만 떡보다 중요한 건 양념이다. 떡볶이의 진짜 승부수는 양념, 그리고 떡에 양념이 얼마나 잘 배어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먹어본 떡볶이 중 양념이 특이했던 곳이 있다면?
지금은 없어졌지만 양념에 파프리카를 넣은 곳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먹은 떡볶이는 파인애플 맛이 나서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진짜 넣었다고 하시더라. 신도림역에 있는 ‘동글이 떡볶이’라는 곳이었다. 맛있게 싹싹 비웠다. 전주에는 단맛을 홍시로 내는 떡볶이집이 있는데 그곳도 맛있다.
떡볶이를 위해 가장 멀리까지 간 곳은 어디였는가?
대부분의 여행이 떡볶이를 먹기 위한 여정이다. 부산은 기본이고 제주도도 떡볶이집 루트를 짜서 간다. 당장 8월에도 울산으로 떡볶이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가장 멀리서 먹어본 건 신혼여행을 갔던 이탈리아에서 먹은 떡볶이다. 한국 분이 운영하는 한식당인데 맛있었다.
집에서도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가? 추천하는 레시피나 밀키트가 있다면?
물론이다. 집에서도 정말 많이 먹는다. ‘선매 떡볶이’라는 밀키트가 내 기준 밀키트 떡볶이 중에 가장 맛있고 매장에서 먹는 맛이랑도 가장 흡사하다. 참고로 밀떡이다. 모임 회원들이나 가족들도 다 좋아하는 호불호 없는 밀키트이다. 최근 떡볶이 밀키트 행사를 진행하며 대량 구입해서 지금 집 냉동실에 쌓여 있다. (웃음)
떡볶이가 건강에는 안 좋다고들 하지 않나. 따로 관리를 하고 있는지?
살이 쪄서 운동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떡볶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살찌는 음식을 먹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 같다. 함께 떡볶이를 먹는 모임 회원 중에 활동을 하면서 8kg를 감량한 분도 있다. 그렇기에… 떡볶이는 나쁜 음식이 아니다.
‘떡지순례’ 모임을 4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잘 될 거라 예상했는가.
원래도 떡볶이를 좋아했지만, 항상 먹는 곳에서만 먹고는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검색을 했는데 떡볶이집이 전국에 너무 많은 거다. 전국 모든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어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우리끼리만 정보를 나누는 게 아깝기도 하고 좋은 콘텐츠가 될 것 같아 인스타그램을 만들었다. 잘 될 거라 예상했다. 모임을 잘 운영할 자신도 인스타그램을 키워 낼 자신도 있었다.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이었는가. 모임을 잘 운영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가.
보통 러닝이나 등산 등 운동 모임이 많지 않나. 떡볶이 모임은 거의 없었다. 한국인치고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에 ‘이렇게 맛있는데 왜 없지?’라고 생각하며 반응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또, 불순한 목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없이 정말 ‘떡볶이’만을 위한 모임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선발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는 불평불만도 많을 정도다.
정모에서 먹은 떡볶이마다 평가를 올린다. 평가는 어떤 식으로 하는가? 정해진 기준이 있나?
떡볶이를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나눈다. 큰 틀은 있는데 평가는 주관적이다. 떡에 양념이 배어있지 않을 때 감점이 가장 크다.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는 5점, 재방문 의사가 있는 곳들은 3점 이상이다.
모임을 운영하며 겪었던 가장 큰 고난이 있다면?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에는 모임을 두어 차례 중단했다. 거리 두기 제한이 완화될 때만 모임을 열곤 했다. 그리고 사람이 힘들다. 여러 기준을 내걸고 있다 보니 거짓말을 했다 들통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데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든지. 모임에 정말 들어오고 싶었나보다 하며 이해한다 쳐도, 본인을 꾸며낸 사람들은 모임에서의 태도나 말투도 좋지 않아 분위기를 흐리더라.
모임을 하며 만난 소중한 인연도 많을 것 같다.
결혼한 아내도 이 모임을 통해 만났고 지금도 같이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나보다 더 떡볶이를 좋아한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또 시도해 보는 걸 좋아하는데 믿을 수 있는 회원들이 함께해 주고 도와주는 덕에 다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것저것 일을 벌리면 회원들이 나서서 수습해 준다. 하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7만 명이다. 어떤 식으로 계정을 키웠는지?
일단 아이폰으로 촬영을 해야 했고(웃음), 인기 있는 음식 계정과 사진을 정말 많이 분석하며 여러 구도를 시도해 봤다. 떡볶이 말고 다른 음식도 좋아하기에 맛집 계정을 운영할까 생각도 했지만 떡볶이 만을 다뤄서 경쟁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맛집 인플루언서는 경쟁이 치열한 반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 당시 떡볶이 만을 다루는 계정은 많이 없었다. 다른 떡볶이 계정들보다 사진을 잘 찍을 자신도 있었다.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나.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며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 후 6개월 뒤에 다시 제안 주시고, 또 거절하니 6개월 뒤에 또 제안을 주시고. 세 번 정도 거절을 하다 한번 해보자며 쓰게 되었다. 집필하는 데는 딱 1년이 걸렸고 하루에 세 번씩 매일 떡볶이를 먹었다. 책에 실린 가게들은 모두 허락을 거쳤는데 거절 당한 가게도 정말 많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 힘든 시기였다.
유튜브 콘텐츠도 여전히 만들고 있는가.
1년 정도 해보고 접었다. 아내와 둘이 만들었는데 둘 다 직장 때문에 얼굴을 공개할 수 없어 제약이 있더라. 시간과 노력도 너무 많이 들어 일단 잘 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할 것이다. 떡볶이 소개도 좋지만 오래된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의 얘기를 들으며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명해 보고 싶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떡볶이와의 이별
직장에 재직 중이다. 회사와 병행하며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가.
진짜 좋아서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콘텐츠에 대한 아예 부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모임도 하고 여러 프로젝트도 하는 게 재밌고 스트레스 받거나 하기 싫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생업이 아니니까 부담을 덜 느끼며 즐겁게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현재까지 떡지순례 모임 이름으로 기부한 게 1천만 원 정도 된다.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이 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싶다. 그리고 떡볶이 분야의 ‘블루리본’을 기획하고 있다. 회원들과 부지런히 떡볶이집을 다니고 또 평가를 하고 있는 만큼, 전국 곳곳에 떡볶이 덕후들만의 공신력 있는 표식을 붙이고 다니고 싶다. 앞으론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다양한 국내 지역의 떡볶이집을 방문할 계획이다.
본인에게 떡볶이란?
떡볶이 덕에 인생이 바뀌었다. 결혼도 떡볶이 덕에 하고, 책도 내고 다양한 기획도 해보고. 혹여나 앞으로 떡볶이를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슬퍼지는 ‘반려 푸드’다.
떡볶이집은 쉽게 없어진다. 대부분 소상공인이 운영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책에 소개한 떡볶이집도 2~30%가 폐업했다. 20년 이상 영업해온 가게가 사라지면 충격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없어지기 전에 빨리 열심히 먹고 소개도 부지런히 하려 한다. 아직 못 가본 떡볶이집이 너무 많고 앞으로 가능한 오래 계속 떡볶이를 먹을 것이다.
인터비즈 지희수 기자 heesu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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