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인구절벽과 톨레랑스
(서울=뉴스1) = 최근 프랑스는 이민자 시위로 큰 혼란을 겪었다. 지난 6월 27일, 교통 검문을 피하려던 이민자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가 되어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노동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자,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등 이민자를 대거 수용했다. 이러한 이민정책은 인구 증가에 기여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민자 2세들이 주류사회에 섞이지 못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불만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있어 프랑스의 자부심이자, 자랑인 톨레랑스(tolérance) 정신이 여전히 굳건한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 위에 있다. 이러한 프랑스의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톨레랑스는 ‘참다’, ‘견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tolerantia’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신·구교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16세기부터 쓰였으며, 폭력적인 갈등의 경험을 통해 17세기 말에 이르러 종교적 관용이라는 도덕적 관념으로 승화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행히도 종교 간 갈등이 격한 사회적 대립으로 비화해 온 경험은 적다. 그러나 향후 프랑스처럼 이민자들과의 충돌과 갈등이 사회문제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최근 점차 심화되는 저출생 고령화에 의해 인구절벽이 현실화되자 이민정책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대한민국의 인구수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현 상황에서 노동력의 부족을 외국인력의 유입으로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내국인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동력의 부족을 외국인이 대신하는 것은 이미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인구감소, 고령화의 농어촌 지역과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제조업, 건설업의 일부 직종들에서는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운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일손이 부족한 지역에서 외국인과의 경제공동체는 형성되었지만, 지역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고, 지역주민과의 교류나 유대를 논하기에는 사회적 거리감이 크다. 그러므로 외국인과 이민자를 당면한 인구절벽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력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지역주민으로, 한 동네 사는 이웃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구감소의 문제를 외국인과 이민자 유입에만 집중하여 접근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외국인 유입 증가로 인해 생산인구는 일시적으로 충원될 수 있지만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출산하기 힘든 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외국인들 역시 출산하지 않을 것이며 고령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농어촌 일자리 부족을 메우고 있는 외국인들이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거나, 열악한 근로환경에 처해있는 외국인이 더 나은 일터를 원해 이직하는 경우 여전히 농어촌, 열악한 일자리는 일손이 부족할 뿐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얼마만큼 받아들일지의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을 조성하고, 지역의 구성원으로 통합하기 위한 전략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 편에서는 다가올 인구절벽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우려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경력 단절 여성이 있는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39만여명으로, 경력 단절의 사유는 육아(42.8%)의 비중이 가장 크고, 그 밖에 결혼(26.3%), 임신·출산(22.7%)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족돌봄을 사유로 일을 그만둔 여성이 전년도에 비해 1만4000여명 증가했는데 이는 고령화로 인해 부모 세대 돌봄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일하고 싶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돌봄, 교육시설 등의 인프라와 프로그램 확충이 필요하다.
고령층의 경제활동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60세 이상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8.2%로 통계작성이 시작된 1999년 6월 이후 동월 기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고용률 역시 47.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하기를 희망하는 고령층이 증가하고 있으며 고학력, 경제활동의 원동력인 베이비붐 세대의 신노년층 등장은 인구절벽 시대의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224만여 명으로 이중 장기체류자가 168만여 명에 이른다. 코로나 시기에는 주춤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 우리 사회도 빠르게 다인종, 다문화사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기에 이민과 그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는 이민자들을 환영했으며 그 결과 이민자는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사회경제적 활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통합정책의 결과 전 세계에서 온 작가, 과학자, 예술가, 운동선수 등이 다양하게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이민자들의 시위는 종교, 인종, 문화적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이 이민자들의 빈곤, 주거지 분리, 범죄, 소외감 등 복잡한 요인들과 얽히면서 사회통합 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섬세한 사회통합 정책 마련과 사회적 포용 없이 이민정책을 인구감소의 해결책으로만 바라볼 경우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들이 등장할지 시사점을 준다.
성큼 다가온 인구절벽 시대 여성, 노인, 외국인 등 생산과 노동에서 주변에 머물러있는 이들을 생산활동에 끌어들이기 위해 장벽을 없애고, 질 좋은 일자리와 일하기 좋은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성별, 세대, 인종 등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한국식 톨레랑스 정신이 필요하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장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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