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이사하고 새로운 장소에 정착하기
큰 아이는 프로 적응러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도 어린데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사를, 그것도 주(state) 경계를 넘어서 일곱 차례 넘게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경험을 연속해서 해야만 했다. 작은 아이도 이사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이사를 하는 구나라고 자각하고 말할 수 있는 나이에 이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커다란 한 개의 국가지만 우리 나라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주(state)와 주의 차이가 큰 것도 많아서 때로는 이사가 아니라 다른 나라로 이민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주 경계를 넘어서 이사할 때마다 운전 면허증도 그 주의 것으로 새로 다시 발급 받아야하고 심지어 면허 시험을 다시 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 등록도 새로 해야 하고 보통 의료 보험도 새롭게 바꾸어 가입해야한다. 아이들 학교도 학제가 조금씩 달라서 예컨대 6학년들은 어떤 주에서는 초등학생이고 어떤 주에서는 중학생이다. 미국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중소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살던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살아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민자가 아닌 다른 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이주민 취급을 받는 경우도 왕왕 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갈 때마다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지인들에게 아이들에 대해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어렸을 때는 괜찮아요", "다 금방 적응해요"와 같은 말이다. 내가 아이들을 걱정 할까 봐 격려 차, 또 응원 차 해주는 말들일 터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전문가 아닌 전문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매번의 적응이 사실 항상 어떤 방식으로든 힘이 든다는 것을, 또 어떻게든지 배우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의 이사를 통해 배웠다. 큰 아이는 이사 뒤에 늘 결과적으로 참 적응을 잘 하고 무엇이든지 잘 해주고 있어서 항상 고맙고 대견하다. 그리고 나는 두 아이들이 이번에도 잘 적응해주리라 믿는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하는 "어렸을 때는 잘 몰라." "어렸을 때는 금방 괜찮아져."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 새로 적응하고 고생하는 것이 전부 트라우마이며 아이들에게 악영향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그 당시 겪는 긴장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고민은 오롯이 현실이고 오롯이 아이들의 경험으로 남는 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때론 어른들에게는 유치하게 보일 수 있고 찰나의 순간 같이 보이는 경험들이 아이들에게는 깊이 각인 되는 경우도 있다. 남부의 인종차별적인 학교에서 한식 도시락에 냄새가 난다고 반응하는 다른 아이들의 말이 상처가 되었던 일이 그렇다. 어렸을 때는 괜찮은 것이 아니라 아이도 부모도 괜찮아질 수 있게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후에 다른 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뒤, 아이는 모두가 자신의 한식 도시락을 부러워한다며 자랑스러워 했고 이 때의 경험이 그 나쁜 기억을 좀 희석시켰다. 나쁜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다른 기억으로 희석되고 치유될 수는 있다.
어렸을 때는 잘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안다. 다만 어른들이 잘 모른다고 믿는 것이다. 아이는 놀랍도록 자신에게 우호적인 새 친구나 새 선생님의 마음을 눈치 챈다. 거기에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더 명랑한 성격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분위기가 이민자에게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이면 아이도 이사 직 후에 좀 덜 위축되는 편이다. 그러나 도시 분위기와 아이 기관의 분위기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특히 영유아 때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그 에너지를 읽는다. 행동부터 자연스러워진다. 아이들은 다 안다.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고 나면 우리는 최대한 가족끼리 같이 외출을 자주 한다. 아이가 다니게 될 기관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주변도 탐색해 보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근처 공원이나 상점을 반복해서 구경하기도한다. 낯선 장소에서는 엄마인 나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고 어색하게 보일까봐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는 사람들과 스몰토크(small talk: 대도시에서는 좀 덜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도 아니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모르는 사람과 남녀노소에 관계 없이 사소한 대화를 참 많이 한다. 날씨 이야기도 하고 동네 이야기도하고 잠시 낯선 이와의 짧은 수다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도 더 많이 하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낯선 곳은 엄마도 불편하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이 곳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거라는 것. 좋은 장소, 좋은 사람들이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그리고 이제 이사는 끝이길. 앞으로 이사를 한다면 그저 같은 동네에서 움직이는 정도이길. 완전히 정착하고 싶은 엄마는 아이들에게 티가 나지 않도록 여유로운 척 속으로만 간절히 기원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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