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길 걷다] "'잘' 가르치고, '계속' 연구할 수 있게" 만들어야

정종오 2023. 7. 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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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 보편적·제자리걸음→도전·혁신·창의적 정책으로 변화해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의사과학자들이 연구현장에서 함께 토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의사과학자를 잘 가르치고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덜 성숙됐다는 의견이 많다. [사진=UNIST]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의사과학자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자퇴·미등록 학생 중 거의 대부분이 자연계열이었고 이들은 이후 의학계열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계열 중에서도 진료를 하는 임상의로만 집중되고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 길을 걷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임상의로 가면 미래가 보장되고 ‘편안한 길’에 접어들 수 있는데 굳이 의사과학자로 갈 이유가 뭐냐는 거다.

전문가들은 의사과학자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잘'과 '계속'이란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는 과정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의사과학자의 길을 걸을 때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많은 게 사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동안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았는데 전문가들은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기정통부는 선도연구센터 기초의약학분야(MRC)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기초의약학분야를 지원해 왔다. MRC는 기초의약학 연구 활성, 인력 양성을 위해 의·치·한의·약학 단과대학당 1개 센터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과제당 연간 14억 이내로 총 7년 이내로 지원했다.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우리나라 의료산업이 임상에 지나치게 치중돼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기초연구에 인력이 몰리지 않으면서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정부는 2001년 ‘기초의과학육성종합계획’을 만들기에 이른다.

2002년부터 사업에 들어가 지금까지 100개 MRC 과제에 총 5천767억4천600만원을 지원했다. 2002년~2021년까지 MRC의 총 논문 성과는 SCI(Science Citation Index) 1만718건이었다. 최근 3년 동안(2019~2021년) SCI 논문건수는 8천965건으로 최근 증가하고 있다고 과기정통부는 강조했다.

과기정통부의 MRC 기술이전 성과. [사진=과기정통부]

2002~2021년까지 MRC의 총 특허성과는 2천442건(출원 1천746건, 등록 696건)이며 최근 3년 동안(2019~2021년) 특허는 684건(출원 490건, 등록 194)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인력양성 성과로는 2002~2021년까지 MRC의 석·박사 고급인력 양성은 총 3천746명(박사 1천341명, 석사 2천405명)을 배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MRC 연세대 김재우 교수는 ‘섬유증의 예방 또는 치료용 약학 조성물’의 기술이전 등으로 151억5천만원의 기술료 성과를 2020년 창출하기도 했다. 반면 창업은 2021년 2개 업체에 불과했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MRC가 지난 20년 동안 기초의약학의 탄탄한 바탕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의료분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며 “기초가 튼튼한 과학기술 강국을 만들기 위해 연구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기초연구의 미래를 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최근 의사과학자가 ‘독립적 연구자’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섰다. 진료 업무 부담으로 연구시간 확보가 어렵고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올 때까지 직업적 불안정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과기정통부(장관 이종호)는 삼성서울병원, 한림대 산학협력단, 단국대 의대 부속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전북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 6개 병원을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로 선정했다.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는 의사과학자들이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의료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센터 당 연간 20억4천만원을 지원한다.

이종호 장관은 “의사과학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학부과정부터 독립적 연구자로 성장하기까지 촘촘하게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실질적으로 연구현장이 변화하기 위해 병원과 학교 등 현장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전문가들은 이젠 정책 방향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MRC 사업의 경우)기초의학으로 인력이 가지 않으면서 시작된 사업”이라며 “(임상의로만 대거 몰리고)기초의학을 계속하겠다는 이들은 줄고, 인력이 (기초의학으로)안가니까 피폐해지고, 피폐해지니까 인력이 또 안가는 악순환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배경으로 MRC는)기초의학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경쟁과 창의성보다는 죽어가는 기초의학을 살려보자는 보편적 지원에 중점을 뒀다”며 “전국에 있는 기초의학연구실을 하나씩 지원해 준 게 그 배경”이라고 말했다.

연구역량의 경쟁력과 독창성, 창의성, 혁신성 등이 지원 선정 기준이 아니라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등에 골고루 지원해 준 것이란 설명이다. 이런 지원사업이다 보니 기초의학분야의 현상 유지와 어느 정도의 발전은 있었는데 ‘도전적이고 창의적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6개 병원을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로 지정해 연간 20억4천만원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른 의사과학자 전문가는 “병원에서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니 정부가 지원하고 의사과학자들에게 연구 시간을 더 많이 제공하라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며 “현재의 병원 운영 시스템이 바뀌기 않는 이상 이 같은 정책으로도 독립적 의사과학자를 육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MRC와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 등의 정부 지원 사업에 성과가 없고,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고 이들은 전제했다. 의학이 바이오, 인공지능, 반도체 등 다른 학문과 융·복합되는 상황에서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정책으론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진단이다.

그는 “의사과학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전문적 교육과정과 그 과정이 끝난 이후 계속할 수 있는 연구 환경 등 두 가지가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다”며 “이를 어떻게 만들고 발전시킬 것이냐에 주목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굳이 임상의로 가면 ‘편안한 길’이 보장되는데 의사과학자를 지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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