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만족 못하는 시급 9860원… 소모적 ‘노사 흥정’ 방식 고쳐야[10문10답]

정철순 기자 2023. 7. 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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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최저임금제
최저임금위, 노·사·공 각각 9명
산출식 없이 ‘액수 좁히기’ 협상
법정시한 지킨 건 9차례에 불과
일본, 중앙·지방 심의회서 결정
영국, 독립위서 건의 → 정부 수용
노동계 염원하는 ‘시간당 1만원’
경영계 “주휴수당으로 이미 넘어”
업종별 차등적용 두고도 대립각
지난 1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을 986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240원(2.5%)이 올라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며, 소상공인이 대거 문을 닫았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2021년·1.5%)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낮은 인상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곽성호 기자

지난 19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최저임금 회의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 심의 요청(매년 3월 31일) 이후 109일이 소요됐으며 역대 최장 기록(2016년·108일)을 경신하는 등 어느 해보다 많은 논란을 낳았다. 최저임금 심의는 매년 법정시한(심의 요청 후 90일 이내)을 넘기고, 막판 타결을 위해 밤샘 ‘마라톤 회의’에 들어가는 등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노·사 간 뚜렷한 대립 전선을 보이기도 한다. 노·사 대표자들과 이를 중재하는 공익 위원 등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과학적 근거보다는 ‘흥정 방식’으로 이뤄지는 결정 구조 탓에 최저임금위 안팎에서도 제도 개편의 목소리가 나온다.

1. 최저임금 결정, 언제부터 시작됐나

최저임금제도는 세계적으론 1894년 뉴질랜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고, 한국은 1988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최저임금제도는 헌법 32조에 기반하며 별도의 최저임금법을 갖고 있다. 1988년 처음 최저임금제도가 적용됐을 당시 최저임금은 462.5원이었다. 최저임금법 1조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라고 적시했는데, 최저 수준의 생계는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가 짙다. 1988년 시행 당시에는 제조업 상시 노동자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만 적용됐고, 1990년 모든 산업에 확대 적용됐다. 이후 1999년 5인 이상 상시 노동자로, 2001년부터 5인 미만 모든 사업장까지 적용이 확대됐다.

2.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은

최저임금위는 위원장을 비롯해 근로자 위원 9명과 사용자 위원 9명, 정부가 추천하는 공익 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 위원 9명은 각각 한국노총 5명과 민주노총 4명으로 구성됐으며, 사용자 위원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크고 작은 경영계의 대표들로 짜인다. 공익 위원은 노동 분야 전문가를 비롯해 현재는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등 9명으로 구성됐다. 근로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들은 각각 노동계와 경영계를 대표해 최저임금의 액수를 협상하고 공익 위원들은 양측 간 중재를 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 차가 커 공익 위원들의 중재 및 결정 권한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3.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은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한 공식적인 산출 방식은 없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1인 가구의 한 달 생계비’(241만 원)를 근거로 최저임금 요구액을 1만2000원으로 설정했다. 경영계는 노동생산성과 대내외 경제 환경을 이유로 동결을 주장했다. 다만 양측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공익 위원들은 최근 2년간 ‘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 상승률-취업자 증가율’을 산식으로 두고 중재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내년도의 최저임금은 약 9960원 선이었다. 그동안 노동계는 해당 산식을 두고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는데, 내년도 최저임금은 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결정됐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해당 산식이 고용과 투자 등 주요 거시경제 변수들에 미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담지 못한다는 비판이 큰 만큼 수치 모델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4. 흥정형 산출방식 변화 필요성도

최저임금 협상이 과학적 기반을 두지 않다 보니 노동계와 경영계가 일정 기준을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정한 액수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반 기업의 임금 협상은 노·사 교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은 최저임금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를 대표하는 입장이다. 이들의 협의에 따라 수많은 기업과 근로자들이 영향을 받는다. 올해의 경우 노동계가 공익 위원 합의안인 9920원을 거부했다가 투표를 거쳐 9860원으로 결정됐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협의 및 산출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크다. 특히 고용·노동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협의에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정부가 일정 부분 개입하면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의 개편 목소리가 나온다.

5. 매년 법정시한 미준수, 왜 그러나

1988년 이후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8차례밖에 되지 않으며,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9차례다.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지킨 경우보다 많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법정시한보다 중요한 것이 노·사 간 충분한 협의”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기준점 없이 공전하는 회의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법정시한이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노·사 협의 구조로 이뤄지는 탓에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별건의 문제로 회의가 지체되기도 한다. 올해는 특히 노동계가 공익 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활동 경력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하며 초반 파행을 겪었고, 중반에는 근로자 위원으로 활동하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구속과 해촉 결정으로 노·정 갈등까지 불거져 최저임금의 액수 문제가 뒤로 밀렸다.

6. 해외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은 최저임금제가 없다. 노·사 간 협상에 임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문화가 강한 북유럽 중심 국가들은 국가의 임금 체계 개입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제외하고 상당수 국가는 법으로 최저임금제를 만들어 근로자에 대한 일종의 보호막을 만든다. 다만 제도 안에서 정부 개입 등 운영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중앙심의회가 제시한 목표치에 따라 지방 정부인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심의회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중앙과 함께 지방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취지다. 2년 단위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독일은 노·사를 대표하는 위원 각 3명과 전문 위원 2명(학계), 노·사가 추대하는 위원장 등 9명으로 구성된다. 영국은 독립적인 전문가위원회에서 건의하면 정부가 수용하는 구조다.

7. 한국이 일본보다 최저임금 더 높나

한국은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이 쟁점이라면, 일본은 ‘시간당 1000엔’이 관심사다. 지난해 일본 중앙심의회는 올해 최저임금으로 전년보다 3.3% 오른 961엔(약 8800원)을 정했다. 한국의 올해 최저임금이 9620원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최저임금위가 정한 최저임금이 지역 구분 없이 적용되지만, 일본은 지역별로 중앙심의회 기준을 근거로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해도 한국의 내년도 최저임금은 도쿄(東京)의 시간당 최저임금인 1072엔(9720원)보다 높고, 가장 낮은 오키나와(沖繩)·나가사키(長崎)의 853엔(7640원)에 비해선 2000원 정도 많다. 이는 최근 엔저 현상 탓이 크다. 다만 한국의 지난 7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52.4%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기치로 최저임금 인상에 주력한 영향이 컸다.

8.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오른 해와 가장 적게 오른 해 등 기록은

최저임금제도가 정착한 이후 가장 많이 오른 해는 2001년 1865원이었으며, 그다음은 2018년 16.4% 오른 7530원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선 평균 10.6%, 이명박 정부에선 5.2%, 박근혜 정부에선 7.4%, 문재인 정부에선 7.3%가 인상됐다. 윤석열 정부에선 지난해 5.0% 인상에 이어 올해 최저임금위 회의에선 2.5% 인상했다. 가장 적게 오른 해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1년 1.5% 오른 8720원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2.7%)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2.75%)보다 낮은 인상률이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경영 환경이 악화된 점과 문재인 정부 초반 2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점이 반영됐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박근혜 정부보다 낮은데, 2021년도의 낮은 인상률이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은 2024년도 최저임금이다.

권순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 위원 간사가 19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의 투표 결과와 과정 등을 설명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9.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 차는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은 노동계의 숙원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주휴수당’을 포함할 경우 이미 1만 원을 넘었다는 입장이다. 주휴수당은 “사용자는 1주일 동안 소정의 근로 일수를 개근한 노동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 휴일을 주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55조(휴일)를 근거로 하고 있다. 주휴일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가 적용 대상이다. 지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장시간 저임금 근로에 대한 휴일 보장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주 6일 근무가 보편화됐던 당시 근로자가 일주일에 하루는 임금 걱정 없이 쉬게 하자는 취지였다. 경영계를 중심으로 경제 성장에 따라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소규모 사업장에선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주 15시간 미만 근무 행태도 나오고 있다.

10. 경영계에서 제기하는 업종별 차등 적용 쟁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영계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논의를 제기했다. 경영 환경이 열악하고 지불 능력이 제한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계에선 업종별 차등 적용이 숙원이다. 이들은 업종마다 지급 능력과 생산성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일률적인 최저임금 적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숙박·편의점·외식 업종을 중심으로 차등 적용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해당 안건은 부결됐다. 노동계는 “차등 적용이 최저임금제 취지를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특히 차등 적용이 최저임금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낙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본에선 지역 형편에 따라 지역별 차등 지급을 적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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