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건강의 위기고, 약자의 위기다

한겨레 2023. 7.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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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김준혁의 의학과 서사(75)
영화 ‘다크 워터스’와 환경 정의
이번 장마 기간에 내린 집중호우로 쓰러진 비닐하우스들이 빗물에 잠겨 있다. 김혜윤 <한겨레> 기자 unique@hani.co.kr

계속 비가 온다. 어떤 말을 꺼내기도 어렵지만, 엄청난 비로 큰 피해를 겪은 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지지를 표한다. 물론, 이번의 사태를 기상 이변이라고 보면, 그저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과 재난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 피해자 지원 등의 절차를 밟아 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외국의 여러 사례를 들지 않아도, 폭우와 폭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7월의 날씨는 점차 기후 위기의 시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증거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지구 표면 온도 상승으로 인하여 수증기량이 늘어났으며, 그 결과 이번 폭우가 발생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폭우나 폭염이 홍수를 일으키고 인명 사상으로 이어지는 재난도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일이지만, 의료윤리학자로서 나는 이런 기후 위기와 건강의 연관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는 여러 방면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대상 중 하나는 우리와 미래 세대의 건강이다.

기후 조건의 악화는 여러 경로로 사람들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이미 꽤 된 자료지만, 2004년에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렸던 기후와 건강의 연관성을 다룬 논문을 보자. 기후 변화는 지역 기후를 변화시켜 열 관련 질환을 증가시키는 한편, 공기 질 변화와 꽃가루 증가로 인한 호흡기 질환, 미생물의 활성 증가로 인한 감염병, 작물 생산 감소로 인한 영향 결핍, 해수면 변화로 인한 홍수와 태풍의 증가 및 그로 인한 외상, 익사, 거주지 불안정으로 인한 건강 악화 등을 야기한다.

말이 길었지만 간단히 말하자. 기후 위기는 우리 건강의 위기다. 당장 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녀와 미래 세대의 건강에 기후 위기는 큰 위협이다.

이미 지난번에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를 하면서 환경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꺼낸 적이 있지만, 기후 위기는 불균등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의의 문제가 된다. 기후가 변화해도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을 지닌 이들은 별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 내에서도 영유아 및 노인, 기저질환자 및 장애인, 저소득층, 그리고 취약한 지역 거주자들이 기후 위기로 더 큰 피해를 본다. 국제적 수준에서도, 저소득 국가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더 어렵고 더 큰 위협에 처한다.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의 이득을 위해 전체에게 피해가 돌아가며, 특히 그중 취약자에게 큰 해악이 끼치는 것을 부정의한 일이라고 할 때, 기후 위기는 환경 부정의를 초래하고 있으며 그 피해 영역은 무엇보다 건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후 위기에 접근할 때 건강과 연관하여 환경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환경 정의의 문제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2019년 작품 <다크 워터스>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다크 워터스>는 실화와 실제 인명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어,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가 지금 여기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강조한다. 출처: 다음 영화

‘영원한 화학 물질’의 위협

2005년의 ‘테프론 논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프라이팬을 코팅해서 음식이 눌어붙지 않게 하는 성분, 테플론은 미국의 화학 기업 듀폰이 개발하여 오랫동안 보급해 온 것으로 과거 그 합성 과정에 과불화옥탄산(PFOA)이라는 물질을 사용해 왔다. 그리고 이 과불화옥탄산 관련 유해성 소송이 미국에서 제기되면서 테플론 프라이팬, 전기밥솥 등이 인체에 해로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확산되었다. 그리고 영화 <다크 워터스>는 대기업 듀폰에 과불화옥탄산 소송을 걸었던 변호사 롭 빌럿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테프트 로펌에서 막 파트너로 승진한 빌럿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빌럿의 고향 웨스트버지니아의 농부다. 그는 자기 농장 근처에 듀폰이 만든 매립지에서 나온 화학물질 때문에 자기 소들이 병들고 괴이하게 죽어간다며, 빌럿에게 도움을 청한다. 빌럿이 환경 변호사인 것은 맞고, 이것은 환경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빌럿은 개인 민사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기업을 고객으로 하여 그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는 엉뚱한 곳에 도움을 요청한 셈이었다.

그 농부가 자기 할머니와 지인이라는 것을 알지 않았다면 빌럿은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를 챙길 겸 시골에 들른 빌럿은 농부를 만나러 가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서서히 하게 된다. 무엇보다 듀폰의 일 처리가 수상했다. 단순한 피해보상 소송이라고 생각했던 빌럿은 듀폰의 과민반응에 직면하고,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대량으로 쏟아놓은 기록물들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PFOA/C-8’이라는 물질이 옛날 보고서부터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문제는 이 물질의 정체가 알려져 있지도 않고, 식품의약국의 유해 물질 목록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일로 알게 된 화학자로부터 과불화옥탄산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이라는 물질은 최근에 들어본 적이 있다는 답을 빌럿은 듣는다. 그걸 먹는 것은 자동차 타이어를 먹는 것과 같다는 말도. 그리고 이 물질을 다루던 듀폰의 직원들에게 발생한 건강상의 문제들을 그는 확인한다. 알 수 없는 질병과 기형아의 탄생. 이제야 빌럿은 실체적 진실에 다가선다.

듀폰은 내부 보고와 연구를 통해 과불화옥탄산 인체 노출이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익을 위해 이를 묵인하고 제품을 만들어 팔았으며, 그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웨스트버지니아에 버렸다. 폐기물에서 흘러나온 물질은 다시 땅과 물, 그리고 그곳에 사는 동물과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과불화옥탄산이라는 물질은 무척 안정적이라서 환경이나 체내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다. 한번 폐기, 유출, 노출되면 물질은 계속 축적되어 결국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프라이팬, 페인트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 온 과불화옥탄산은 이미 세계 전역에 퍼져 있었다.

진실에 경악한 빌럿은 듀폰과 지루하고 지치게 하는 소송전에 돌입한다. 공동 패널을 통한 대규모 역학조사 시행에 동의하지만, 워낙 대규모였던 탓에 과학 조사 결과가 도출되는 데만 7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 과정에서 빌럿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엄청난 심적 고통을 겪지만, 결국 연구 결과 과불화옥탄산과 신장암, 고환암을 포함한 여섯 가지 질병의 연관성이 밝혀진다. 물론 듀폰은 마지막까지 승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작품에서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겠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영화적 각색은 있을지언정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빌럿은 지금도 살아 있으며, 과불화옥탄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확대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과불화옥탄산을 포함한 과불화화합물(PFAS) 일반을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이라고 부르며 그 사용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여러 지역이 과불화화합물로 오염되었으며, 유럽연합은 이미 해당 물질을 퇴출할 것을 결의하였다. 우리 식약처 또한 과불화옥탄산, 과불화옥탄술폰산 등 과불화화합물의 조사를 시작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별도의 규제는 없는 상황이다.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빌럿은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론, 그가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로펌 대표와 아내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맨손으로 상대했다. 그를 영웅으로 부르기는 쉽고,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환경, 기후와 관련된 문제가 우리의 건강을 압박하고 있는 지금, 한두 사람의 손에만 이 문제를 맡겨둘 수 있을까. 출처: 다음 영화

“우린 우리가 보호해야 해”

<다크 워터스>의 이야기는 특정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고의적 악행이라는 점에서 전 지구적 기후 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문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현재 기후 위기의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환경 정의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대기업인 듀폰은 자국민을 생각하는 기업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뒤에선 유독 화학물질을 마구 버리는 행위를 저지른 다음, 이를 파고들지 못하도록 화학자와 정부까지 매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무마하려 한다.

그로 인해 직접적 피해를 보는 이들은 잘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미 우리 모두 또한 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환경 피해는 불평등하게 주어진다. 말 그대로 환경 부정의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전 지구적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 전체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이루어 냈지만, 여전히 노력은 충분치 못하다. 탄소 배출량 감소는 여전히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오롯이 기후 변화로 돌아와 우리의 건강을 겨냥한다. 그동안 탄소를 배출한 것은 선진국인데 피해는 모두가 보며, 약자들에게 더 큰 해악이 벌어진다. 남의 일도 아니다. 우리도 이미 수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선진국이니까.

영화를 보면서 왜 그렇게 헐크 역으로 유명한 배우 마크 러플로(그가 주인공인 빌럿 역을 맡았다)가 감독을 직접 섭외해 가면서 이 이야기를 찍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이 문제는 시급한 우리의 문제다. 무엇보다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영화 마지막에 본인의 대사로 등장한다. “우린 우리가 보호해야 해. 아무도 못 해 줘. 회사도 과학자들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그렇다. 기후 위기는 누가 어떻게 해주기만을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결국 기업과 국가를 규제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라 해도, 출발점은 회사도, 과학자도, 정부도 아닌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그 피해가 불평등하게 주어지기에, 그들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움직여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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