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볼까”...13년만에 돌아온 거장의 세계 엿보기
회화 설치 등 70여점 전시
‘철망 통닭’‘임신한 망치’등
상상력 통해 현실을 전복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술은 전복이자, 농담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앞다퉈 소장하고 국내 젊은 작가들이 우상으로 꼽는 김범(60)의 만들어낸 미술관은 첫 인상부터 강렬했다. 리움미술관 블랙박스 입구에는 치타를 쫓는 영양의 모습이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된다. 약자가 강자를 사냥하는 ‘전복’을 표현한 미디어아트 ‘볼거리’(2010)다. 미술의 세계는 이처럼 ‘무엇이든 가능한’ 상상의 세계다.
인터뷰나 전시가 드물었던 ‘은둔 작가’ 김범의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 세계를 포괄하는 최대 규모 전시 ‘바위가 되는 법’이 27일 개막해 12월 3일까지 열린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70여점을 선보이는 13년 만의 국내 개인전. 9월 프리즈 위크를 앞두고 ‘국가대표 사립미술관’이 강서경과 함께 세계에 선보이는 한국 작가다.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김범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작가다. 미술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어떤 형식으로 가져올지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적게 보여주는 작가다. 13년간 국내에선 그의 작업을 볼 기회가 없었기에 좋은 만남이 될 것”이라면서 “보고난 뒤에도 여운이 남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미술이라는 ‘농담’의 세계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나온 흔적을 구현한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은 이번 전시의 사진 명소가 될 것 같다. 눈속임을 사용했지만 트롱프뢰유가 아니다. 화분, 도끼, 모종삽 등이 지시문과 함께 놓인 ‘하나의 가정’(1995)은 난폭한 사람의 집에 초대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돌에게도 말을 거는 ‘교육’
김범의 대표 연작 ‘교육된 사물들’(2010)은 2013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이후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미니어처 의자에 앉은 로프 주전자 저울이 수업을 듣는 교실을 구현한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2010) 앞에선 측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칠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영상 속 얼굴의 절반만 비치는 인물이 바로 김범이다.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낭송해주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모형 배에게 지구가 육지로만 되어있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등은 교육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전시 제목 ‘바위가 되는 법’은 작가가 쓴 책 ‘변신술’에 수록된 글에서 따왔다.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를 죽인다. 모든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무시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라고 쓴 농담같은 글은 ‘멍때리기’가 미덕이 된 바쁜 현대인들에게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전도를 위한 학교 등의 정교한 설계도를 그린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은 ‘보고 읽는’ 형식의 상상화로 억압과 폭력이 지배하는 인간 세계의 비관적 세계관을 담았다.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드로잉과 손글씨를 활용한 ‘개념 예술의 난장(亂場)’은 단순하고 소박한 전시 디자인을 통해 다채롭게 구현된다. 장식적이고 화려한 현대미술에 지친 이들에게는 낯설고도, 농담같이 느껴질 전시다. 전시를 관람하고나면, 광범위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하나의 전시로 매듭지은 작가의 질문이 여운처럼 남을 것이다. ‘예술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관람료는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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