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에 푹 빠진 중국 의대생 인플루언서, K문학 전도사 되다

최현준 2023. 7.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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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의 DB deep][인터뷰]
지난해 10월 예멍야오(모니터 속 여성)가 중국 베이징의 한 건물에서 ‘2019~2022 중국 속 한국 문학’ 행사를 열고 있다. 본인 제공

하필 박완서(1931~2011) 작가의 책이어서였을까. 중국 의대에 다니며 한국 문화를 좋아하던 예멍야오(엽몽요·30)는 2017년 한 한국 드라마를 보다 여기 등장한 한국 소설책 한 권을 본 뒤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책은 일제 강점기이던 유년 시절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박완서 작가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다. 이후 박 작가를 비롯해 중국에 출판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예는 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 면허증을 땄지만, 현재 출판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중국 내 최대 1인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직접 만나고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한국 소설을 왜, 언제부터 읽게 됐나?

“2017년 <시카고 타자기>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주인공 직업이 작가였고,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이 등장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많이 봤는데, 한국 문학은 잘 몰랐었다. 이때부터 박완서 작가의 여러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또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한 김영하 작가를 보고,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훌륭한 한국 작가 두 분이 잇달아 제 삶에 등장했고, 이후 꾸준히 한국 문학을 읽고,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문학 작품을 얼마나 읽었나?

“150권 정도 되는 것 같다. 김영하, 한강, 장강명, 문정희 등 좋아하는 작가가 많은데, 1순위는 여전히 박완서 작가다. 중국의 문학 팟캐스트 등에 출연하면 박완서 작가를 추천하는데, 이렇게 그를 소개한다. ‘박완서의 천재성은 소설의 분위기와 행간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해 거대한 시대적 배경을 쓰고, 사람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사회에 남긴 흔적을 보여준다.’”

―또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

“천명관 작가의 <고래>라는 작품을 좋아해서 거의 매년 한번씩 읽고, 주변 친구 10여명에게도 이 책을 선물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도 좋아하고, 친구들한테도 많이 선물했다.”

―현재 무슨 일을 하는가?

“출판사에서 일한다. 저는 의대를 다녔고 학업을 마친 뒤 의사가 되려 했지만 한국 문학을 읽고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병원이 아닌 출판업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은 좋은 한국 문학 작품을 읽으며 시작됐고, 처음은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것부터다.”

―소득 등 차이가 클 텐데, 고민은 안 됐나?

“소득 차이가 크지만, 전혀 고민되지 않는다. 사실 막 한국 작품을 접한 24살 때 의학 수업에 집중할지, 한국 소설을 계속 읽을지 고민이 됐다. 그때 우연히 한강 작가가 24살 때 썼다는 글을 읽었다. ‘추석 밤, 처음 직장에 다니며 도둑 글을 쓰던 때, 지금 이 마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달을 보며 빌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도 계속 책을 읽겠다고 생각했다.”

예멍야오(왼쪽)가 지난 5월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국제문학축제에 참가한 문정희(오른쪽) 시인과 함께 있다. 본인 제공

―한국 문학 작품과 관련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나?

“2019년부터 (중국판 카톡과 트위터인) 위챗과 웨이보에서 한국 문학 1인 미디어 계정인 ‘GoodbyeLibrary’(굿바이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구독자가 2만3천명 정도 된다. 한국 작품의 중국어판 출판 정보를 공유하고, 작가 인터뷰나 평론 등을 공유한다. 종종 좋은 책을 만나면 내가 직접 서평을 쓰고, 좋은 인터뷰나 평론 등을 번역해 올리기도 한다.”

―왜 이런 활동을 하나?

“한국 문학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연예계 외에도 다른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 내 계정에 한국 문학에 대한 정보가 많이 쌓여 있고, 중국인들이 한국 문학을 접하는 통로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도 하던데.

“‘한국 문학 고고’라는 행사를 1년에 한번 정도 연다. 혼자 할 때도, 한국문화원 등과 함께할 때도 있다. 2019년엔 서울로 문학탐방을 갔고, 2021년에는 베이징에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중국 내 한국 문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주로 참가하는데, 연필 굿즈를 직접 만들어 회원들에게 선물했다. 나는 이곳이 문학을 나누는 따뜻한 공감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중국에서 한국 문학 작품의 위치는 어떤가?

“최근 들어 확실히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출판된 작품 수가 증가했다. 개인적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오차가 있을 수 있는데, 2021년 중국 대륙에서 출판된 한국 문학 작품은 모두 9권이었는데, 지난해 24권으로 늘었고, 올해는 6월까지 19권이 출간됐다. 하반기에 10여권이 더 나온다고 하니, 올해가 아마 중국에서 가장 많은 한국 문학 작품이 출간된 해가 될 것이다. 또 중국 온라인 평점 누리집인 더우반에 ‘한국 문학 상위 10선’이 올라와 있다. 그만큼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늘었다는 증거다.”

―한국 문학 작품이 중국에서 더 환영받으려면?

“당연히 좋은 문학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된다. 나는 ‘문학에는 경계가 없다’고 믿는다.”

예멍야오가 2021년 한국 문학 고고 행사를 위해 만든 연필 굿즈. 본인 제공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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