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논란 커지는 유럽, 이번엔 獨에서도 "극우당과 협력 가능"
유럽 전역에서 불법 이주민 이슈로 급격히 득세한 극우 정당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소속된 독일 최대 야당 기독민주당(CDU·기민당)에서도 극우 정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스페인에서는 전날 치러진 총선 결과로 인해 극우 성향의 복스(Vox)의 연합정부 참여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극우 정당의 첫 내각 입성으로 기록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메르켈 속한 獨정당 대표 "극우당과 손 잡을 수도"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사진)가 독일 ZDF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기초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협력할 수 있다"고 밝힌 사실이 독일 전역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민당은 독일 국민은 물론 유럽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메르켈 전 총리가 소속돼 있는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이다.
최근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의 돌풍이 잇따르는 가운데, 독일에서는 극우 성향인 AfD의 약진이 가시화된 결과가 나왔다. 최대 일간지 빌트암존탁이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 AfD가 22%로 창당 10년만에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다. 26%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기민·기독사회당(CSU) 연합과는 불과 4%포인트 차이다.
그간 극우 정당이 연방·주의회 등에 잇달아 진출해도 다른 독일 정당들은 이들과 연정 구성 등의 협력을 금기로 삼아 왔다. 하지만 메르츠 대표는 AfD 소속 후보가 최근 튀링엔주 존넨베르크에서 기초지자체장으로 뽑힌 것과 관련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선거 결과에 따라 당연히 기초지자체 의회 차원에서 해당 기초지자체 정부를 어떻게 꾸릴 지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fD와의 협력금지는 연방의회나 주의회 또는 유럽의회 차원의 이슈에 해당하고, 이를 어기면 당에서 제명될 수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다만 기초지자체 수준에서의 협력은 이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또한 '극우 정당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일종의 방화벽을 포기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나는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일축하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적 선거 결과를 인정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이날 발언에 독일 전역이 들끓고 있다. 현재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의 디르크 비제 원내부대표는 "동독주의회 선거를 1년여 앞두고 극우에 대항하는 방화벽의 근본을 뒤흔드는 야당 대표의 발언은 충격적"이라며 "극우 정당과의 협력에 눈치를 보던 동독지역 기민당 인사들에겐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민당 소속인 카이 베그너 독일 베를린시장도 자신의 SNS에 "기민당은 반대와 증오, 분열밖에 모르는 AfD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伊멜로니, 스페인 복스에 위로
전날 스페인 총선에서는 극우 정당 복스가 예상 외로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2019년 총선 당시보다 19석이 줄어든 33석을 얻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중도 우파 성향의 국민당(PP)가 136석을 확보하긴 했지만, 두 정당이 연합하더라도 우파 진영의 의석 수는 과반(176석)에 못 미치는 169석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당분간 스페인에서는 캐스팅보트를 쥔 군소 정당들을 연정에 끌어들이기 위한 좌·우 진영 간의 치열한 수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여론조사에선 국민당과 복스 연합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며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 그리스 등에 이어 스페인에도 보수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이와 관련해 FT는 "5월 지방선거의 압승이 스페인의 우파 진영에 오히려 독이 됐다"고 전했다. 국민당은 올해 5월 열린 지방선거에서 좌파 성향의 집권당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이후 복스와 연정을 꾸린 뒤 장악한 140개 지자체에서 성소수자 깃발 금지, 자전거 도로 폐쇄, 친환경 에너지 반대 등 각종 강경 정책들을 선보였다. FT는 "이를 경험한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는 우파 진영에 등을 돌렸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극우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경계한 반극우 민심이 결집한 것도 복스의 흥행을 저지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복스의 '예상 밖 참패' 이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산티아고 아바스칼 복스 대표에게 전화해 총선 패배를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일간지 일폴리오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아바스칼 대표에게 총선 패배 원인을 물은 뒤 "지중해에서 (우리에게) 우호적인 정부를 갖지 못하게 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자신이 이끄는 우파 성향 집권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은 복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함께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라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멜로니 총리는 복스가 스페인의 집권 세력이 되면 불법 이주민 문제 등에 관해 스페인 정부와 공동 전선을 구축해 영향력을 키울 예정이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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