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배틀’ 진서연, 드라마와 180도 반대로 가는 여자[스경X인터뷰]
배우 진서연과 그가 연기한 ENA 드라마 ‘행복배틀’의 송정아는 하나의 직선 위에 등을 마주한 채 서로 반대로 달리는 인물 같았다. 진서연은 송정아의 가치관과 정반대에 서 있으며, 실제 그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진서연은 ‘행복배틀’ 속 송정아처럼 자신의 입지를 과시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고,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등 사교육에 열심인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그는 이번에 아예 그러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석 달 전 제주로 이사를 했고, 매일 아이에게 흙을 밟게 해주는 공동육아에 열심이다.
극 중 이미지도 그러하다. ‘원 더 우먼’ ‘행복배틀’을 이어가며 가져오던 센 이미지와 달리, 그의 소원은 주성치급의 코믹한 작품을 찍는 일이다. 아니라면 달달한 멜로연기도 괜찮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서연의 이미지와 실제 진서연의 간극은 아득하기만 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들의 부류를 직접 본 적도 없고, 저 스스로도 반대로 살기 때문에 ‘진짜 그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차예련씨나 박효주씨의 경우에는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 그런 이야기에 공감하더라고요. 하지만 드라마처럼 시기질투가 있지는 않다고 해요. ‘배운 사람들인데 예의를 지키죠’라던데요.”
‘행복배틀’에서 진서연이 연기한 송정아는 극 중 배경이 되는 고급 아파트의 학부모 모임을 이끄는 인물이다. 사업가 출신의 넓은 인맥과 정보력 그리고 재력으로 육아는 물론 학부모 커뮤니티의 여론을 이끈다. 극 중 사건의 발단이 되는 오유진(박효주)의 사망사건과 함께 그는 초반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르지만, 사실 송정아의 정체는 ‘고달픈 장녀’일 뿐이었다.
“막바지까지 범인 누구냐는 결과보다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배틀’을 하며 사느냐 그런 장면을 보는 게 더 재미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바람피우고, 능력없는 남편을 가짜 행복을 위해 포장하고, 여자들끼리 만나면 서로 깎아내리는 듯 치켜세우는 군상을 보는 재미죠. 송정아의 경우는 남편과 동생들의 사건사고를 모두 뒤치다꺼리해야 했어요. 부모가 없으면 장녀가 부모 대행을 하는 문화는 너무 당연하다고 느껴 몰입했습니다.”
진서연이 ‘행복배틀’을 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물론 ‘내 이름은 김삼순’ 김윤철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여성의 서사를 세밀하게 다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한 점은 진서연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생동하는 캐릭터 외에도 이엘, 박효주, 차예련, 우정원 등 색깔이 강한 여성 캐릭터들과 함께 하는 재미는 ‘행복배틀’이 주는 행복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남자 주인공이 없는 작품이 없었어요. 그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했죠. 여성의 경우는 남성을 받치는 캐릭터가 많았어요. 제가 했던 ‘원 더 우먼’이나 ‘행복배틀’ 등은 여자들이 주도적으로 극을 이끄는 작품들이에요. 제가 재미있는 것이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악역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면 제가 유일하게 악역이 아니에요.(웃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재미있었죠.”
‘행복배틀’ 출연 이유에서 비롯된 ‘행복’에 대한 고찰은, 자연스럽게 진서연이 제주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지난해 제주에서 한 달살이를 시작했던 진서연은 그 생활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이사하기로 했다. 마침 남편도 고민만 하다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자, 지금 결정하자’는 마음이 잘 맞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실 이번 촬영 때는 막판에 촬영이 몰려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그래도 3개월을 촬영장과 집을 오가면서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하늘길로 출근으로 하면 퇴근을 하는 길이 제주도로 가는 길이었고…. 너무 행복한 삶이죠. 아이도 자주 못 보긴 했지만 아쉽고 애틋한 마음을 집에 갈 때 집중하니 더 좋아했어요.”
진서연이 자라던 시절 부모세대들에게는 헌신과 희생이 인장처럼 박힌 삶이 있었다. 그는 희생만 하는 부모의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만약 행복하게 키우려고 한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 싶었다. 그래서 진서연은 아이와 떨어질 때, 운동하거나 관리를 하거나 촬영을 할 때 ‘엄마가 열심히 일해야 장난감과 함께 놀 수 있다’며 말해준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진서연이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이다.
“아이교육에 대한 신조는 간단해요. 공부는 하고 싶다는 게 아니면 안 시키고, 놀게 할 거예요. 자존감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고요. 얼마나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한 건지를 알게 하고 싶어요. ‘행복배틀’의 엄마들은 그랬지만, 제게는 밀어붙이는 교육관이 맞지 않아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에 딸 셋 중 둘째였던 진서연은 그만큼 빨리 어른이 됐다. 긍정의 힘으로 자신을 일으키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모습을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라고 바라는 역할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 진서연은 마지막까지 “꼭 코믹연기! 주성치처럼 잘 할 수 있다고 써주세요! 멜로도요”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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