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전사한 러軍 일기 공개…‘2살 아들’ 가장

2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오데사 성당의 내부가 파괴된 모습. 오데사 지역 군정 책임자는 이날 새벽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어린이 4명을 포함한 18명이 다치고 민간인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당신들(가족) 곁에 돌아가고 싶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원령 발령 후 최전선에 투입됐다가 숨진 러시아 군인이 유품으로 남긴 일기가 공개됐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모스크바에 살던 건설 노동자 비탈리 탁타쇼프(31)는 공책에 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쓰며 전쟁터에서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33쪽에 걸쳐 기록했다.

2018년에 결혼해 두 살 아들이 있는 탁타쇼프는 약 1년6개월 전만 해도 직장에 다니고 휴가 때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의 삶은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부터 바뀌었다.

러시아 정부는 같은해 9월 예비역을 대상으로 부분 동원령을 발령했다. 탁타쇼프는 2개월 뒤인 11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토크마크 전선에 투입됐다.

탁타쇼프는 징집 첫 날이었던 11월29일자 일기에 "우리는 (체첸군)근처에 머물고 있다. 밤에도 총소리가 들린다. 드론이 날아다니고 대포가 작동하는 것을 봤다"며 "(가족이)모두 너무 보고 싶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썼다.

다음 날 일기에선 자기가 곧 전투에 투입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두렵다.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쓴다. 집으로 가고 싶다. (가족)모두 정말 사랑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모든 종교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도 살인하지 않고, 그들(우크라이나군)도 우리를 죽이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건물이 드론(무인기) 공격을 받아 파손돼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공격을 "우크라이나의 테러"라고 규정하며 "드론 2대를 격추했고 사상자는 없다"고 밝혔다. [연합]

탁타쇼프는 12월4일자 일기에선 아내를 향해 "정말 사랑한다. 당신과 함께 늙고 싶다. 부디 나를 기다려달라"며 그리움을 내보였다.

전쟁 장기화로 새해 휴가가 취소됐을 때는 "주변 사람이나 나 자신을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다"며 "오늘은 나무를 자르던 중 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당신들(가족) 곁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썼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1월5일자를 마지막으로 일기 쓰기를 멈췄다. 이후 그의 시신은 이달 첫째주에 발견됐다.

자포리자 지역 남동부 평원으로 진격한 우크라이나군은 이곳에 그대로 방치된 전사자 시신을 다수 확인했다. 탁타쇼프의 시신도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탁타쇼프의 군복 주머니에서 구겨진 일기장을 발견했다.

선데이타임스는 "우리가 찾은 건 푸틴의 전쟁으로 미래가 파괴된 한 가정의 모습"이라며 "이들의 이야기는 크렘린궁의 거짓말 뒤에 숨은 현실을 알려준다"고 했다.

한편 러시아는 연일 우크라이나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공습했다. 오데사 지역 군정 책임자인 올레흐키페르는 텔레그램에서 "오데사가 테러리스트들의 야간 공격을 받아 불행히도 민간인 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yu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