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 전쟁 파병 통해 상호보완적 관계로… ‘가치동맹’ 진화 [심층기획-한·미동맹 70주년]

구현모 2023. 7. 2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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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한반도 넘어 우주까지 협력 강화
6·25 이후 美에 군사·경제 등 의존
韓, 베트남전 참전 고도성장 발판
이라크전 파병 등 동맹 신뢰 증진
美, 지정학적·안보측면 韓 가치 커
군수물자 표준 같아 공유도 가능
‘미래 전장’ 우주 분야도 협력 확대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시작한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지키는 군사동맹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 인권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으로 진화해왔다. 6·25전쟁 당시 한국은 미국의 군사원조를 받는 나라였지만 이후 미국이 주도한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 부대를 파병하며 상호보완적 관계로 발전했다.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이슈에서 가치 공유국으로서 미국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
◆일방적 도움 받던 시대 끝나

6·25전쟁 이후 한동안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에 의존하는 ‘비대칭적 관계’였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는 일종의 ‘원군’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베트남전과 2000년대 이라크전에 한국이 참전한 것을 계기로 ‘수평적 관계’를 향해 나아갔다. 유엔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평화유지활동(PKO)과 달리 베트남·이라크 두 차례 파병은 전적으로 한·미동맹 틀에서 이뤄졌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4년 5월 미국은 한국 등 우방에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박정희정부는 국가안보회의(NSC) 심의와 국회 동의를 거쳐 국군 파병을 결정했다. 1964년 9월 1차부터 1966년 4차 파병까지 지속적 증원으로 베트남 내 우리 병력은 한때 4만8000여명이나 되었다. 국군이 철수를 단행한 1973년 3월까지 총 8년8개월간 베트남을 거쳐 간 우리 장병은 연인원 32만명에 이른다.

베트남전 참전은 1960∼19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에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국군이 미국에서 받는 참전수당과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제공하는 차관 등으로 ‘베트남 특수’란 말까지 생겼다. 다만 국군 5099명의 전사와 지금도 고통받는 고엽체 피해자들, 또 국군이 베트남 양민을 살해했다는 논란 등은 참전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정전협정(왼쪽), 한·미상호방위조약.
2003년 3월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보유를 이유로 들어 이라크를 침공했다. 영국을 제외한 미국의 우방들은 이 전쟁에 회의적이었다. 국내에서도 부정적 목소리가 컸으나 당시 노무현정부는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파병을 결정했다. 2003년 4월 공병(서희부대) 및 의료지원(제마부대)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2004년에는 이라크 재건 지원을 위한 자이툰부대 파견까지 이뤄졌다. 자이툰부대 병력은 한때 3800여명에 달했다.

두 차례 파병은 6·25전쟁 당시 미국의 희생에 보은하는 차원도 있었으나 한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 한·미동맹의 유지·강화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로 보는 게 옳다. 베트남 파병의 경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전이 장기화하면 주한미군 일부가 베트남으로 이동하면서 한반도에 안보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미군 감축을 막기 위해 우리 군의 파병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당시 한반도와 동북아는 2차 북핵 위기로 안보를 위협받고 있었다. 위기 해결이 시급한 상황에서 노무현정부 입장에선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전 파병을 통해 동맹 간 신뢰를 증진시킬 필요성이 컸다.
◆한반도 밖으로 확장하는 동맹

한국의 국력 신장에 따라 한·미의 상호보완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이 지정학적으로나 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임교수는 “한국의 많은 장비나 군수물자들이 미국 표준에 맞게 되어 있어서 굉장히 유용하다”며 “미국이 최근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자기들의 포탄을 제공해주고, 대신 한국에서 포탄을 들여오는 방식을 택한 것도 자신들 표준에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미연합사(왼쪽), 주한미군 사드 포대.
이 밖에 한·미 동맹은 우주·사이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하는 관계로 발전할 전망이다. 특히 미래의 전장이라 불리는 우주 분야의 경우 미국은 2019년 우주군 창설 이래 주한미군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 우주군은 군사위성 관리와 적의 미사일 활동 감시, 우주 장비를 이용한 조기경보 체계 운용 등이 주된 임무다. 우리 공군의 우주작전대대는 미군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우주작전 능력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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