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막음용 재판’서 반전 설파…불굴의 ‘법정 투쟁’[시스루피플]

박은하 기자 2023. 7.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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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인권활동가 올레크 오를로프
2022년 노벨 평화상 받은
‘메모리알’의 공동 설립자
단체 강제 해산에도 잔류
재판 활용 전쟁 비판 계속
러, 언론인 등 반체제 인사
반역죄 적용 등 탄압 가중

올레크 오를로프(70·사진)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법원을 나오면서 “그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며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판결을 바꾸기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고 르몽드가 22일 전했다. 그는 ‘러시아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6월8일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은 세 번째 공판일이었다.

오를로프는 202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의 공동설립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체포되길 반복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 러시아에 자유” “진실을 아는 것을 거부하고 침묵하는 것은 우리를 범죄의 공범으로 만든다” “소련 1945, 파시즘에 승리한 나라. 러시아 2022, 승리한 파시즘의 나라”… . 새로운 손팻말을 들 때마다 체포됐고, 벌금을 물었다. 재판 때마다 러시아 정부가 반전 시위를 막기 위해 고안해낸 새 법령이 적용됐다.

오를로프가 러시아군의 명예훼손을 범죄로 간주하는 전시검열법으로 재판을 받게 된 건 지난해 11월 프랑스 매체 메디아파르에 실린 ‘러시아: 파시즘을 원했고 얻었다’란 제목의 기사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페이스북에 게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개정된 전시검열법에 따르면 형량은 최대 5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해외로 떠났지만 오를로프는 남았다. 국제적 유명 인사라 망명할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오를로프는 이날 재판을 마친 후 “러시아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평생 동안, 내가 선 자리는 침묵하지 않는 것을 내 의무로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르몽드가 전했다.

오를로프가 ‘자신이 설 자리’를 정한 건 15세 때이다. 모스크바 태생인 그는 1968년 8월 소련 탱크가 체코슬로바키아에 진입해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키는 것을 보면서 소련 체제의 억압성을 인식하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소련과학아카데미 식물생리학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반체제 활동을 했다. 1981년 폴란드에서 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연대노조 시위가 전개됐을 때 시위를 지지하는 전단을 돌렸다. 1983년부터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의 활동이 성공을 거둔 적은 많지 않다.

폴란드 시위는 폴란드 정부의 계엄령 선포로 진압됐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10년 동안 지속됐다. 그는 음지의 반체제 활동가 시절부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단련돼 있었다.

오를로프는 인권단체 메모리알을 설립해 1991년부터 공개 활동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러시아의 2차 체첸전쟁(1999년), 남오세티야 침공(2008년), 크름반도 강제병합(2014년) 등이 발생했을 때마다 가장 앞장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메모리알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2021년 11월 ‘외국대리인’이란 이유로 해산됐다.

공개적인 전쟁 비판이 금지된 러시아에서 오를로프의 법정은 전쟁을 두고 공개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공간이 됐다. 독립언론 메두자에 따르면 그는 법정에서 “전쟁 비판은 러시아군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러시아군의 전사자 수가 몇 명이냐?”고 군 검찰 측을 향해 되묻고 증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오를로프의 재판을 방청한 한 비정부기구 활동가는 “푸틴 정권은 우리를 외국 대리인이라 선언하고 단체를 폐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알렉상드르(65)는 메모리알이 만든 기념관 인권센터를 두고 “민주화를 꿈꾸는 새로운 러시아의 희망의 시작”이었다면서 “(메모리알 폐쇄로 러시아 사회는) 엄청난 후퇴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메모리알 활동가들은 다른 단체를 만들어 러시아군 범죄 기록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반체제 활동가에 대한 탄압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법원은 지난 5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정치 활동가이자 언론인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에게 대반역죄로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러시아 검찰은 징역 11년9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야권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에게 지난 21일 극단주의 활동 혐의로 징역 20년을 추가로 구형했다. 오를로프에게도 중형 구형이 예상된다.

메두자에 따르면 오를로프는 지난해 11월 메모리알이 제작한 팟캐스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련 시절처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결국은 저항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위험하다. 하지만 조금씩 자멸하는 것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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