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기상의 시대] 산은 하나인데 관할부처 4곳...“떠넘기기식 방재시스템 人災 부른다”

최정석 기자 2023. 7.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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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10건 중 8~9건, 인공적 개발로 발생”
“한반도 주요 지질 ‘화강편마암’ 풍화 정도 분석해야”
산사태 방재 매뉴얼·예산도 재정비해야
지난 16일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면 백석리 산사태 현장에서 경북소방본부 등 구조인력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새벽 5시쯤 장맛비가 쏟아지던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쑥대밭이 됐다.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마을 전체가 토사에 쓸려나간 것이다. 백석리 주변 마을인 감천면 진평리, 벌방1리, 용문면 사부리도 산사태 피해를 입었다. 경북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사고로 2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상태라고 밝혔다.

장마가 오는 25일쯤 끝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태풍이 북상하면서 언제든 집중호우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된 비에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작은 비에도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방재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12년 전 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 이후 산사태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에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오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에서 한 주민이 산사태가 할퀸 마을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명피해 일으킨 산사태 10건 중 9건은 사람 탓에 발생”

산사태는 산비탈에 깔린 흙이 빗물을 흡수해 무거워진 상태(포화상태)에서 암반경계면을 따라 순간적으로 쏟아져내리는 현상이다. 장마 시기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흙이 포화상태가 됨과 동시에 흙 밑에 있는 암반경계면까지 물에 젖어 미끄러워져 토사가 흘러내리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산사태가 발생하면 산 위쪽에서 무거운 토사가 대량으로 쏟아져내리기 때문에 나무가 뽑히고 바위가 굴러떨어져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각종 토지개발에 따라 인간의 손이 닿은 산에서는 산사태 발생 확률이 훨씬 높다. 빗물에 포화된 흙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나무와 같은 각종 식생들이 막아주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장마 기간에 나무와 식생이 풍부하고 수십 년간 녹화된 숲이 나무가 거의 없는 숲에 비해 토사유출 방지효과가 85배 이상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자연적으로 산사태가 발생할 확률은 10% 내외”라며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을 검토해 보니 80~90%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건드린 곳”이라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이번에 산사태가 난 예천군 현장을 직접 방문조사해 벌목, 송전탑 건설 등으로 주변 산지가 훼손된 게 산사태를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 화강암 분포도. /국토교통부 제공

◇“한반도 주요 지질 ‘화강편마암’ 풍화도 산사태 영향 줘”

한반도 땅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화강편마암이 오랜 시간 빗물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풍화된 것도 산사태에 영향을 주고 있다. 김민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사태연구센터장은 “직접 산에 가서 흙을 파보면 밑에 있는 화강편마암층이 크게 깨져있는 경우가 많다”며 “오랜 시간동안 바위가 비와 바람을 맞으며 풍화된 탓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흙 밑에 깔려있는 바위가 깨져있는 것 또한 산사태 원인이 될 수 있다. 포화된 흙이 암반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에 더해 깨진 바위가 무너지면서 더욱 치명적인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 발표한 대한민국 국가지도집에 따르면 한반도 지질 3분의 2가 화강암, 변성암이다. 변성암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편마암이다.

김 센터장은 “화강편마암이 얼마나 풍화돼있는지도 산사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전수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산사태 위험지역을 설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며 “다만 현재까지는 화강편마암 상태에 대한 조사와 그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 산사태 방재 시스템은 ‘책임 떠넘기기’”

산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예산도 문제다. 김 센터장은 “우면산 산사태같은 일이 벌어지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산사태) 재발 방지에 쓸 예산이 갑자기 늘어난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산사태 이슈가 주목을 덜 받으면 관련 예산도 다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한창 많은 예산이 나오던 때 괜찮은 방재 시스템을 만들어도 예산이 줄면서 유지가 힘들어지면 있으나마나한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산사태 전후 상황을 관리할 책임소재가 과도하게 나눠져있는 것도 문제다. 이 전 교수는 “산지 위쪽은 산림청이, 산 중턱 도로나 터널은 국토부가, 산 하부 각종 시설과 택지는 행안부·지자체가 관리하는 상황”이라며 “서로 자기 관할만 신경쓰며 책임 떠넘기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굴리느라 통합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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